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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 김영환(金永煥, 64세)씨의 16대조이다. 이 자료는 후손 김영환씨가 가지고 있는‘경주김씨공산
군파보’
를 기준으로 정리하였다.
김호연은 호조좌랑을 역임한 김영원(金永源)의 현손이고 통훈대부 장단부사 김희(金僖)의 증손이며
통훈대부로 공산판관을 지낸 김양수(金良秀)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서흥현감 재직 시 임꺽정 토벌에
공을 세우고 안주목사까지 오른 김연(金堧, 1494~?)이다. 김연 이전의 선대는 경기도 광주와 고양
일대에 거주하였다. 김연은 김희의 큰아들 김양언(金良彦)의 셋째아들인데 숙부인 김양수에게 계자
로 왔다. 집안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김연은 복지(길지)를 찾아 서산 음암면 유계리 한다리 마을(대교
촌, 대교동)에 자리 잡아 속칭‘한다리 김씨’터를 닦았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김씨가 태어난 곳
이며, 추사 김정희도 그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호연의 어머니는 완산이씨(完山李氏)이며 지산부수 이저(李
)의 딸이다. 그는 3남 중 둘째로 태
어났다. 그에 관한 사항은 전하는 바가 매우 소략하다. 통정대부 형조참의에까지 올랐으며 부인은 전
주이씨이다. 그가 언제 왜 탕정 밧지므레에 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530년경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하며 약 450년에 들어온 것으로 본다.
그의 외아들 희(曦, 1558~1594)는 가선대부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공연군(公燕君)에 봉해졌다. 김
희는 주(鑄), 은(銀), 벽(壁), 경( ) 등 네 아들을 두었다. 이 중 김은은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역임했
으며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분의정국추성정난공신(奮義靖國推誠定難功臣)에 책록되고 가정대부(嘉靖
大夫) 공산군(公山君)에 봉해졌다. 이후 그 후손들은 충북 음석 감곡에 일부 이주하고 주로 탕정면을
중심으로 거주해왔으며‘공산군파’
로 칭한다.
김호연의 묘는 원래 용두리 진터 뒷산에 있었으나 산업단지 개발이 진행되어 명암4리 동쪽의‘사
당골(지명 유래 확인 안 됨)’
로 2006년에 옮겨 모셨다. 그 아래에 아들 김희 등 후손의 묘가 있다.
손자 김은의 묘는 경기도 파주에 있으며 밧지므레에 사당이 세워졌으나 충남외국어고등학교 건립으로
인해 예산 고덕에 새로 세웠다. 일부에서‘공산김씨’
라고 하는 것은 경주김씨 공산군파를 칭하는 것이다.
-김호연의 묘와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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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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