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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폐합에 따라 강정리, 응암리를 병합하여 삼거리라 하여 음봉면에 편입되었다.
5)
입향
삼거2리(강정골)에 사람이 모여 살게 된 것은 지금부터 약 250년 전으로 최씨들이 정착을
했으나 지금은 김씨들의 집성촌이 되었다.
6)
지명
삼거리 : 삼거리의 주된 마을 면사무소가 있다. 길이 세 갈래로 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
강정골 : 삼거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전엔 무쇠점이 있었다고 한다.
새 터 : 매바위 옆에 새로 된 마을.
매 봉 : 삼거리 남동쪽에 있는 산기슭에 매 바위가 있음.
어마목고랑 : 어리목고개 남쪽에 있는 긴 골짜기
능 밑 : 충무공산소 밑에 있는들.
몽수목 : 삼거리 앞에 있는 들
매바위 : 매봉 기슭에 있는 큰 바위. 모양이 매와 같다 함.
물너묵 : 삼거리 동쪽에 있는 높은 고개 삼거리에서 대동으로 가는데, 옛날에는 이곳이 바
다가 되어서 배티고개로 배가 넘어와서 여기로 넘어 갔다함.
어리목고개 : 삼거리 북쪽에 있는 고개 삼거리에서 요로원을 거쳐 둔포로 가는데 골이 깊고
산이 으슥하여 도둑이 많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어울려야 이 고개를 넘어가므로 어리목고개
라 함. 명종때 임꺽정이 어리목산성에 웅거하면서 이곳에 지나가는 진상품을 털었다고 한다.
충무공산소 : 삼거리 서쪽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묘소 처음에는 음봉면 면산 아래에
112호로 지정되었고 그 밑에 상충정무지비 라는 신도비와 비각이 있음.
어제 이순신 신도비 : 어제 이순신 신도비는 1794년 (정조18년)에 건립한 것으로 비신의 크
기는 높이 233cm 폭 105.5cm 두께 47cm 의 규모이다.
이순신 신도비 : 이순신 신도비는 1660년에 건립된 것으로 공의 묘소 입구에 이봉상 신도비
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비의 모습은 거북모양의 농대석과 비신 그리고 두마리의 용이 엉
킨 모습의 가첨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액은 조각되지 않고 후면에 음기는 1693년(숙종
19년)에 가서 된 것이다.
이봉상신도비 : 이봉상 신도비는 1746년 에 건립된 것으로 이순신 묘소 입구에있는 이순신
신도비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본래 이 자리에는 이봉상의 묘소가 있었으나 약 80여
년 전 묘소만 아산군 영인면 아산리로 이장하고 신도비만 남겨둔 것이다.
윤치소 자선비 : 삼거리에 있는 윤치소의 자선불망비. 처음에는 동암리에 있었는데 이곳으
로 옮겨왔음.
윤치호기념비 : 음봉초등학교 앞에 있는 윤치호의 교육사업을 기념한비.
비선거리 : 충무공 산소 앞 백호 끝에 있는 길거리 산부리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충민공
이봉사의 신도비가 있음. 충무공의 묘소가 처음에는 이곳에 있었으므로 신도비를 이곳에 세
웠음.
7)
전설
이순신
만포만호영의 들에는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다. 당시 수사로 있던 성박이라는 사
람이 다른 사람을 보내어 그 오동나무를 베어 가려고 하였다. 얼빠진 전라수사가 잘 자란
그 오동나무로 자기가 즐길 가야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한 마디로 안된다고 거절했다. 이 오동나무는 관천의 물건이다. 저것이 저만치 크
기에는 많은 세월이 경과하면서 이곳을 거쳐간 많은 분들이 길러낸것인데 개인의 가야금을
만들기위하여 하루 아침에베어 버린다는 것은 절대 안된다. 이렇게 거절을 당하고보니 양심
이 있는 사람이면 쥐구멍을 찾아야 할 판인데 성박은 도리어 노하여 이순신을 공격하였다.
5)
입향
삼거2리(강정골)에 사람이 모여 살게 된 것은 지금부터 약 250년 전으로 최씨들이 정착을
했으나 지금은 김씨들의 집성촌이 되었다.
6)
지명
삼거리 : 삼거리의 주된 마을 면사무소가 있다. 길이 세 갈래로 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
강정골 : 삼거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전엔 무쇠점이 있었다고 한다.
새 터 : 매바위 옆에 새로 된 마을.
매 봉 : 삼거리 남동쪽에 있는 산기슭에 매 바위가 있음.
어마목고랑 : 어리목고개 남쪽에 있는 긴 골짜기
능 밑 : 충무공산소 밑에 있는들.
몽수목 : 삼거리 앞에 있는 들
매바위 : 매봉 기슭에 있는 큰 바위. 모양이 매와 같다 함.
물너묵 : 삼거리 동쪽에 있는 높은 고개 삼거리에서 대동으로 가는데, 옛날에는 이곳이 바
다가 되어서 배티고개로 배가 넘어와서 여기로 넘어 갔다함.
어리목고개 : 삼거리 북쪽에 있는 고개 삼거리에서 요로원을 거쳐 둔포로 가는데 골이 깊고
산이 으슥하여 도둑이 많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어울려야 이 고개를 넘어가므로 어리목고개
라 함. 명종때 임꺽정이 어리목산성에 웅거하면서 이곳에 지나가는 진상품을 털었다고 한다.
충무공산소 : 삼거리 서쪽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묘소 처음에는 음봉면 면산 아래에
112호로 지정되었고 그 밑에 상충정무지비 라는 신도비와 비각이 있음.
어제 이순신 신도비 : 어제 이순신 신도비는 1794년 (정조18년)에 건립한 것으로 비신의 크
기는 높이 233cm 폭 105.5cm 두께 47cm 의 규모이다.
이순신 신도비 : 이순신 신도비는 1660년에 건립된 것으로 공의 묘소 입구에 이봉상 신도비
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비의 모습은 거북모양의 농대석과 비신 그리고 두마리의 용이 엉
킨 모습의 가첨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액은 조각되지 않고 후면에 음기는 1693년(숙종
19년)에 가서 된 것이다.
이봉상신도비 : 이봉상 신도비는 1746년 에 건립된 것으로 이순신 묘소 입구에있는 이순신
신도비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본래 이 자리에는 이봉상의 묘소가 있었으나 약 80여
년 전 묘소만 아산군 영인면 아산리로 이장하고 신도비만 남겨둔 것이다.
윤치소 자선비 : 삼거리에 있는 윤치소의 자선불망비. 처음에는 동암리에 있었는데 이곳으
로 옮겨왔음.
윤치호기념비 : 음봉초등학교 앞에 있는 윤치호의 교육사업을 기념한비.
비선거리 : 충무공 산소 앞 백호 끝에 있는 길거리 산부리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충민공
이봉사의 신도비가 있음. 충무공의 묘소가 처음에는 이곳에 있었으므로 신도비를 이곳에 세
웠음.
7)
전설
이순신
만포만호영의 들에는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다. 당시 수사로 있던 성박이라는 사
람이 다른 사람을 보내어 그 오동나무를 베어 가려고 하였다. 얼빠진 전라수사가 잘 자란
그 오동나무로 자기가 즐길 가야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한 마디로 안된다고 거절했다. 이 오동나무는 관천의 물건이다. 저것이 저만치 크
기에는 많은 세월이 경과하면서 이곳을 거쳐간 많은 분들이 길러낸것인데 개인의 가야금을
만들기위하여 하루 아침에베어 버린다는 것은 절대 안된다. 이렇게 거절을 당하고보니 양심
이 있는 사람이면 쥐구멍을 찾아야 할 판인데 성박은 도리어 노하여 이순신을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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