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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호당 평균 소득 : 년/1,080만원
- 최고령자 : 김 난 (91세)
3)
자연경관
덴고지 마을은 온통 들뿐이다. 단지 군데군데 집들이 점처럼 보일뿐이다.
개롱말 마을은 마을이 대부분 논이며 동쪽으로는 아산만으로 이어지는 작은 개울이 있다.
집들은 마을 북쪽 끝에 모여 있다.
4)
마을 변천과정
돈포리는 본래 천안군 덕흥면의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 지방 관제의 개정에 의하여 신창
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의 폐합에 따라 포남리, 신흥리, 십자언리의 각 일부와 비방
면의 상덕리, 돈곶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돈곶과 포남의 이름을 따서 돈포리라 하여 아산군
선장면에 편입되었다.
5)
입 향
돈포리 마을은 청주한씨, 진주정씨, 전주이씨가 약 400년전에 터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하며
지금은 청주한씨 5가구이며 진주정씨는 1가구뿐이며 전주이씨는 5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6)
지 명
건너신동
: 돈곶 건너편에 새로된 마을
곶 : 된고지를 돈곶이라고도 하는데, 된고지라 불리게된 전설외에도 돈곶이라 불리게 된
설이 두가지 있다.
첫째는 윤선이 출입한 돈곶이라는 항구명으로 김복선(젊은 과객의 이름)의 엽초설에서 본
딴 것이다. 엽초설(된고지 지명에 관한 전설)은 전설편에 자세히 소개하였다.
두번째로는 삽교천변에 좁고 길게 뻗은 골지로 삼면이 수면 인고로 물에 쌓인 부토가 아닌
가 염려하여 '두드려 본 곶 이라는
뜻에서 불렀다는 설이다.
서들강문
: 도고, 선장 예산, 당진, 인주등 무한천과 삽교천 하구에 펼쳐져 있는 들을 총체
적으로 부르는 말.
개롱말
: 돈곶 동남쪽에 있는 마을,개 남쪽이 됨.
원 : 돈곶 동쪽에 있는 마을. 군덕리 위쪽이 되는데 초지내의 침수를 막기 위하여 새로
언을 쌓았음.
신원장
: 신원옆에 새로 된 마을 새로 언을쌓고 생긴 마을이라는 뜻
열장원
: 신원 남동쪽에 있는 마을 앞에I 자로된 길이 있어 생긴말
7)
전 설
된고지
(지명에 관한 전설)
선장면 돈포리에 된고지라는 높은 돈 대가곶을 이룬 곳이 있다. 이조때의 일이다. 임금이 김
복선이라는 사람을 시켜 민정을 살피도록 하였다. 어느 마을이 인심이 좋은가 어느 마을이
효부효자가 많은가를 알기 위해서였다. 과적의 행세로 이곳 저곳을 살피던 김복선은 그런대
로 편안히 지낼수 있었다. 모든 인심이 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 이슥할 즈음
그는 지금의 당진군 합덕읍 신흥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걸었기 때문에 그는 무척
피곤해서 어느 집의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리자 한 머슴이 나왔다. "이 곳에서 하룻밤만
묵게 해주시오." 그 말에 머슴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보슈, 이 마을에선 묵지 않
는게 좋을거유." "아니, 이렇게 늦었는데 어떻게 한 단 말이요." "여기서 조금만 가면 강이
있으니 거기서 나룻배를 타시구료. 그 강만 건너면 다른 마을이유."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늦은 것 같아 그는 머슴에게 사정사정하여 겨우 들어 갈 수 있었다. 허술한 사랑방으
로 안내를 받은 그는 머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름이 아까와서인지 불도 켜지 않고
저녁상이라고 주는 것이 꽁보리밥에 간장 한종지 였다. 다 떨어진 이불을 덮고 자며 그는
투덜거렸다. "아니 이런 기와집에서 이러한 대접밖에 할수 없단 말인가." 이튿날 새벽 그 집
을 떠나며 머슴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 마을 사람 모두 꽁보리밥에 간장 한 종지로 나
그네를 대접하는가?" "예, 그것이 우리마을 사람의 밥상과 똑같은 걸유" 머슴의 말에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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