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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대규모로 처음 시작한 사람은 현재의
양계산업단지화가 이루어진 것이 우연
노인회장인 윤서형이다.
이 아닌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남산리에는 옛 지명으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산의
로‘닭모랭이’
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작은 마을들은 한 마을을 이루고 살아
이 마을의 양지와 음지를 나누어 양
가면서도 편안한 서당골 송정과 양계
달 박씨 음달 유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사업이 기업화되어가고 있는 남산이,
살았는데 양달의 박씨가 매우 번성하
그리고 금광이 운영될 때 조성된 주막
여 집집마다 부자 아닌 사람이 없었다
거리의 형태를 띠고 있는 건평이 아주
한다. 끼니때가 되면 박씨네 여러 집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특징을 보이
서 매일 시냇물에서 쌀을 씻었다. 그리
고 있다.
고 그 영향으로 냇물이 왼통 뜨물로
가득차 인근 마을의 모든 닭들이 때가
남산리의 성씨
되면 냇물에 모여들었다. 닭이 모여드
남산리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씨족으
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박씨네는 쌀을
로는 문안 유씨와 경주 김씨 그리고
씻던 시냇가 인근을 닭이 모여드는 모
밀양 박씨를 들 수 있다. 이 중 가장
퉁이라는 뜻으로‘닭모랭이’
라고 불렀
오랜 성씨는 문안 유씨로 이 마을에
다는 것이다.
들어와 15대를 이어 왔으며 밀양 박씨
닭의 습성 중에서 먹이통 속에서도
가 11대, 경주 김씨가 9대를 이어왔다.
발로 먹이를 헤집는 경박한 짐승이라
양달의 유씨 음달의 박씨라는 말이
해서 지명에 이용되는 빈도가 낮은데,
회자되었을 만큼 양성씨(兩姓氏)가 집
닭모랭이라는 지명이 있었고 현재의
성촌을 이루고 살아가다가 경주 김씨
남산의 대규모 양계농장의 모습
MAY/JUNㆍ
3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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