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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다. 부부가 모두 사망할 경우에는 계원자격이 소멸된다. 현재 80여 명의 계원이 남아



있다.



버스가들어오기전황교리마을주민들은주로원전재를넘어다니면서생활하였다.
도로가만들어지고버스가들어오기전,황교리주민들은시장이나면사무소를가기위
해원전재를넘어다녔다.원전재는황교리와노천리사이에있는높은산으로자전거도
탈수없는가파른길이었다.무성굴,석진개,광암주민들은무조건이원전재를넘어야되
었고,부주굴주민들은죽청리를통해다녔다.
황교리광암마을주민들은마을의목장성을성뚝이라고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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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리 광암마을에는 토진곶목장성이 지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 성이 목장성인지
는모르고그저옛날전쟁을위해쌓은성이라고만알고있었고,성뚝이라고불렀다.성뚝
을 기준으로 북쪽은 광암이라고 불렀고 남쪽은 석진개라고 불렀다. 황춘연 님은 성과 관
련된전설을듣지못했다고한다.
황교리주민들을노천리사람들이괴롭혔다.
황교리주민들은원전재를넘어노천리를통하여웅천장에가거나면사무소를다녀야
했다.1960년대까지는노천리사람들이황교리에서다니는사람들을괴롭히곤하였다.당
시는 건달들이 무법천지로 일반인들을 괴롭히는 시대였다. 웅천 읍내에도 건달 깡패들이
많아시골에서온사람들을괴롭혔다.
황교리광암주민들은바다건너대창리에서나무를하였다.
황교리는 산이 낮고 가옥이 밀집되어 늘 나무가 부족하였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가 대
창리 산에서 나무하였다. 대창리에 있는 산은 광암 주민들의 종중산이라 나무하기 좋았
다.다만바다를건너기가어려워서아랫궁뎅이라고불리는곳을건너다니며나무하였다.
아랫궁뎅이는썰물때지게를지고도건널수있었다.황춘연씨는배를가지고가서나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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