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23페이지

318페이지 본문시작

316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4
이성구 이장도 미륵이 이정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중국 사신이 한양에서 들어
올 때 덕산, 대술을 지나왔는데 그때 이정표로 미륵을 세웠다는 것이다. 어릴 적, 소를 장터
까지 끌어다주는 끌이꾼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부처님인 미륵 앞에
편육과 육포를 올리는 것에 대해 묻자 이성구 이장님은 미륵을 부처로 생각하면 부처이고,
옛날 어른들의 형상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여겨 육포를 올린다고 했다. 부처의 신앙에서
온것이지만부처와미륵은다른것이라고생각한다.
미륵제를올릴때외에마을에서따로정성을올리지는않는다.개인적으로미륵앞을지
날때‘오늘하루무사하게지내게해달라’고마음속으로비는사람은있겠지만,개인이따
로치성을올리는지는확인할수없다.다만무속인들이와서정성드리게해달라고하면그
것은엄격하게막는다고한다.마을주민들은지금도미륵제를올리면비용을낸다.마을에
있는45가구대부분이갹출을한다.미륵제를올리는것은주민화합을위해서이다.신앙으
로 믿는 것보다 옛날 어른들이 해왔기 때문에 그것을 계승하고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구 이장에게 미륵은 마을의 상징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보물이다. 이러한 마음이 있어
마을 경비로 ‘성암리’라고 새긴 표지석을 마을 입구에 세웠을 때 표지석 앞에 상을 차리고
고사를올렸던것이다.
이성구씨는직접장승과솟대를제작한다.배워서하는것이아니라농업말고도목수일
을 하여 손재주가 있어 쉽게 장승과 솟대를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 장승 제작자에게
맡기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므로 할 수 없다. 결국 손재주가 좋은 그가 장승을 제작
하여세운것이다.그는장승을이정표로활용한다.그래서미륵불로가는중간중간에미륵
당길 800M, 미륵당길 500M 식으로 장승에 표시를 해서 세웠다. 미륵이 있어서 장승과 솟
대를세웠다는그야말로이마을의보배인셈이다.
성암리는 현재 변화하고 있다. 이웃한 부장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왔다. 성암리에 유명한
칠성바위가 있었지만 경지정리를 하면서 땅을 파고 묻었다. 그때 장비가 열악하여 지금도
트랙터로 밭을 갈면 얕게 묻은 칠성바위에 자꾸 걸린다. 마을 이름 중에 둘은 도로명으로
남았지만 나머지 둘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성암리는 성암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큰 변화
를 맞았다. 미륵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이성구 이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열성이 있어 다

318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