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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치는소리가나면잡았다.물속에서도작업했는데매우힘든일이었다.

남,

여름철,황교리광암마을주민들은보골치낚시를다녔는데1/5을배삯으로냈다.



황춘연 님은 봄 어장 철이 끝나면 어업활동을 하지 않고 가끔 낚시질을 다녔다. 여름에


는보골치가많아잡혔는데,마을주민들과함께가까운바다에나가보골치를잡았다.함


께 배를 타고 나가는 주민들은 잡은 고기의 1/5을 배 삯으로 내는 것이 관례였다. 보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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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의미끼는쏙이었다.쏙은소의섬남쪽에서잡았다.소의섬남쪽에는속이많아속바
탕이라고불렀다.
조기는외연도둠벙에서낚시로잡아소금에절여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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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춘연님은여름철외연도에서조기를낚아팔기도하였다.외연도부근에는조기둠벙
이라고 불리는 깊은 바다가 2곳 있어 그곳에서 낚시하였다. 잡은 조기는 입에 소금을 많
이 넣어 빳빳하게 절여두었다가 팔았다. 조기는 빳빳하게 절여야 잘 팔렸다. 외연도는 멀
기때문에여러날머무르면서낚시하였다.조기의미끼는미꾸라지였다.미꾸라지를세로
로갈라미끼로썼다.
황교리무성굴마을안쪽에서소금을구웠다는이야기
황춘연(1942)님은 황교리 무성굴마을 안에서 소금 굽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이야기는
들었고,논에박힌말뚝을보았다.말뚝은과거갈통에박았던말뚝이었다.
황교리에는어촌계가조직되어운영되었는데,현재도유지되고있다.
황교리에서는 어선어업을 하거나 양식업에 종사하고, 갯벌에서 어업을 한 주민들이 모
여 어촌계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부사지구 간척사업 이후에는 육지화되어 어업활동은
하지못하지만아직도어촌계가유지되고있다.부사지구간척지의일부토지를어촌계원
에게임대해주기때문이다.현재임대되는면적은1500평이다.전에는5다랭이까지도임
대해주었으나점차줄어들었다.
황교리 어촌계의 계원이 사망했을 때는 부인에게는 상속되지만 아들에게는 상속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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