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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의풍부한어족자원이만들어낸어로문화 ?315
되면서는 중선을 인근에서 가장 많이 부리기도 했으나 1983년에 서산 AB지구
간척사업이이루어진뒤농경지는확대되었지만어업은줄었다.
어업과 연계되어 있던 영신제는 자연스레 축소되었고, 산신당은 도로 건설로
인해사라졌으며,장승제도중단되었다.어업이번성할때선주와주민들이합심
해 지내던 마을 제사가 어업의 쇠퇴로 인해 소멸되고 축소된 것이다. 이곳의 당
제는무당을불러당굿을추가한‘당굿형당제’로,내륙과달리해안은어업이라
는 특별한 조건이 충족되면서 마을 제사가 당굿형으로 확대되었다. 지금은 영신
제만이남아있지만상당제로산신제,하당제로장승제와샘제등이있었다.
마을의 서북쪽에 상당이라 불리는 산신당이 있었다. 마을 초입을 에워싸고
있는 작은 동산으로, 외부로부터 마을로 들어오는 온갖 잡된 것을 막아주는 역
할을 했다. 산의 중앙에는 약 6.6㎡의 장방형 누석단(累石壇)이 있었다. 그 중앙
에는 자그맣게 돌을 쌓고 쇠말[鐵馬]을 봉안해 두었다. 쇠말은 발이 한 개 부러진
형태였다. 호환(虎患)이 심하던 해에 말이 밀려오는 호랑이를 발로 걷어차며 막
아내다가발한개가부러졌다는이야기가전해진다.
서해안의 마을들은 일찍부터 왜구의 침입과 잦은 전염병, 해일 등으로 고통
을 당했다. 그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마을 어귀에 쇠말[鐵馬]을 봉안한 제당을 건
립한 것이다. 쇠말이 사라진 뒤에는 사기로 말의 형상을 구어다가 놓기도 했다.
그러나 건설회사가 간척사업을 위해 도로건설을 하면서 이마저도 남아 있지 않
다. 제사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다. 하당은 영신당으로, 마을 동북편 해
변에 위치한 당산에 있다. 중앙에는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기와집이 있다.
그주변에는담이둘러져있고,정면에문을달아두었다.
당집 앞에는 70∼80명이 서 있을 정도의 공터가 있으며, 뒤편으로는 해송(海
松)이 빼곡하게 심겨져 있다. 당산의 나무를 베면 벌을 받는다는 금기가 지금까
지 존속되고 있어 해송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 이전의 당집은 1911년에 중건되
었다. 이 당집은 선주들이 주동이 되어 만든 목조와가(木造瓦家)였다. 현재의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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