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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고기는주로웅천장에팔았다.

남,
광암마을 어선이 잡은 고기는 주로 웅천 장에 내다 팔았다. 어지간하면 완장내까지 들

어와리어카에싣거나지게에지고웅천장에가져다팔았다.웅천장에서경매는하지않



았지만 장사꾼들이 있어 팔 수 있었다. 완장내까지 들어오지 못할 경우에는 뱃마티에서


지게에 지거나 부인들이 머리에 이고 웅천 장에 내다 팔았다. 먼 거리라 가급적 완장포까


지배로들어왔다.옛날완장내에들어온배들은10여척되었는데모두광암이나무성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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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들이었다.
고기를특별히많이잡으면무창포항이나홍원항으로들어가경매에부쳤다.
중선배들은연평도를오가면서조기를잡았고선원들이납북되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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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선배들은 웅천읍 대창리 사람들이 운영하였다. 이들 중선배는 사리 때 나가 조
업하다가조금때들어왔는데,먼바다로다니면서고기를잡았다.조기를잡기위해연평
도까지갔다.연평도에서는납북되는경우도많아서,몇몇사람들은이북에납북되었다가
풀려나왔다.우리나라에서옥고를치른사람들도있다.
부사지구방조제건설로황교리의어선어업은중단되었다.
황교리광암마을과무성굴마을주민들이하던어선어업은부사지구방조제가건설되면
서중단되었다.당시홍원항이나무창포항으로이동하여사업해도되는데대부분은보상
금을받고어업을그만두었다.
황교리에서는은포리사람이김양식을하였다.
황교리마을에서는1970년경,주교면은포리사람이와서김양식을시작하였다.그전
에는김양식을할줄몰랐다.이사람이성공하는것을보고주민들도따라하게되었는데,
마을앞갯벌에서는못하고,웅천천이흘러내리는갯골의볼때기에서주로하였다.수심이
깊어노출되는시간이적었기때문이다.김은품질이좋아잘팔렸다.
황춘연님도20떼를맸는데장소가부족하여무조건넓힐수도없었다.어촌계가조직되
어있었고,양식장을넓히려면개인간에거래하여사서넓혔다.어촌계는현재도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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