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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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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유명해져서 지금은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그 또한 매일매일 미륵을 접하고 있으
니미륵과친근할수밖에없다.
강댕이미륵불이된사연
원래이미륵은고풍리에있었는데고풍저수지가건설되면서수몰이되자현재의자리로
옮긴 것이다. 용현리가 고풍리와 이웃해 있기는 했지만 보원사 터가 있어 불교와 관련이 있
는 마을이라고 여겨 미륵을 용현리 강댕이골로 옮긴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 미륵을 ‘강댕골
미륵’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강댕골에는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는 보원사가 있었다. 보원
사는스님들이천여명이상있던큰절로,절앞에커다란당간지주가지금도남아있다.커
다란 당간지주 만큼이나 보원사는 그 규모가 큰 절로, 지금 조계종 교구 사찰로 인정된 수
덕사까지보원사의지시를받을정도였다.그리고스님들을가르치던강당이있어서강당골
이라불리던골짜기이름이오랜세월이흘러가면서강댕골로바뀌었고,고풍리에서옮겨온
미륵을강댕골미륵이라부르게된것이다.
이정표가되어주는미륵불
유치호씨는미륵을이정표라고생각했다.용현리를비롯하여태안에있는안흥에서부터
성암리를 거쳐 용장리, 용현리, 상가리에 모두 미륵이 있어, 이 마을들을 연결하면 안흥에서
배를 타고 들어온 사신이 부여나 공주로 가던 길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미륵의 손
형상이각각다른것도무엇인가표시하는것이있다고믿었다.이말은어려서집안할아버
지들께들었던말이다.특히용현리에는그유명한서산마애삼존불이있는마을이다.그만
큼 이 지역에는 불교 유적이 많다. 그래서 마애삼존불을 새긴 석공들이 여러 마을에 있는
미륵을조성했다고생각하고있다.
보통의 경우 마을에 이런 미륵불이 있으면 마을에서 제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지만, 현재
강댕골 미륵에서는 마을에서 제를 올리지는 않는다. 가다 오다 미륵에게 인사를 올리는 사
람은 있지만 신심을 다해 믿지 않는다. 용현리 주민들은 미륵이 원래 고풍리에 있던 것이어
서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고, 고풍리 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자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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