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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스스로 '청취당'이라는 호를 짓고 '경설국'이라는 별호도 가지고 있었다. 청취당은, 성자의
맑은 성품과 대나무의 푸른빛을 취하여 지은 것이고, 경설국은 하늘이 자신을 이 세상에 무심하게 내
려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가지와 잎이 무성한 '동국의 계수나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라니 참 대단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스스로의 존재에 대하여 자부와 긍지가 뛰어난 오청취당은 모든 사물과
인생의 희노애락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오청취당의 뛰어난 시문들은 그 당시는 물론이고 최근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다행
이 몇 년 전 서산문화원에서『청취당집』
을 발간하고 이후로도 계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오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청취당이 떠난 길을 따라 갔던 일행은 돌아올 수 없는 그녀를 남기고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돌아
오는 길, 문득 삶과 죽음이 한 길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가슴 찡한 청취당의 시문을 감상하노라니 가슴이 먹먹해왔다. 특히 어린 나이에
친정 어머니를 여위고 철없는 동생을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시구( 句)와 병마와 싸우며 운명 직전에
쓴 시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일행은 시간을 거슬러 청취당이 생전에 살았던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문화원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일행이 향한 다음 답사지는 청취당이 결혼하여 살았던 마을 음암면 유계리였다. 안타깝게도
청취당이 살았던 집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사색하고 고뇌하며 걸었음직한 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힘든 시집생활을 하면서 두 자식을 가슴에 묻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던 그녀는 이 길
어딘가에서 바람과 구름과 들꽃들을 벗 삼아 글을 지으며 심신의 고독을 달래보려 했을 것이다.
일행은 경주 김씨 가문인 정순왕후 생가와 김기현 가옥 등을 둘러보고 단구대( 丘 )와 용유대(
)로 향했다. 이 일대 어딘가에 살면서 이 길을 수없이 거닐었을 거라 생각하니 예전에 이런저런
다른 일로 지나쳤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 길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함께 숨 쉬고 울고 웃었을 길가에는
푸른 들풀들이 말없이 짙게 깔려있었다.
답사를 마칠 때까지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게 곱고 뜨거웠다. 온 몸으로 삶과 문학을 끌어안고 살다간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리움과 외로움을 품고 살았던 한 여류시인이 자신의 지병과 자식을
잃는 아픔까지 겪으면서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걸었을 논둑과 밭이랑, 그리고 솔밭 모롱이. 그때 거기가
지금 여기 어디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의 희미한 발자국 위에 내 작은 그림자를 얹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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