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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이 붙어사는 모습이었으며 안골을 제
외하고는 마을이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땅에서 금(金)이 생산되기 시
작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초엽인 1910년대 중반
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일본인들이 들
어와 금을 캐기 시작하였고 갑작스러
윤석형 남산1리 노인회장
운 금광의 출현은 살아가기 힘든 농업
꺼려했다 하니 두 마을의 성향이 어떠
환경의 어려움을 단숨에 바꾸어 인동
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라
의 사람들이 금광에 취직을 하게 되고
할 것이다.
주막거리가 번성하면서 남들이 어렵게
넘겨야 했던 일제 강점기 동안이 오히
양계의 마을 남산
려 살기 좋은 세월로 바뀌어 버렸다.
장군봉 아래 마을이 남산이다. 마을
흥미로운 것은 장군봉에서 내린 두
전체를 내려보는 형상으로 앉아 있는
개의 산줄기 중 오른쪽 줄기에서만 금
장군봉은 위엄이 있고 산 아래 마주앉
이 생산되고 서당골로 유명한 송정 뒷
은 남산은 선비를 닮았다 한다.
산, 즉 장군봉의 왼쪽 산줄기에서는 단
남산도 다른 마을처럼 금광의 영향을
한 곳도 금광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받아 번성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들
이다.
어서 금광이 쇠퇴하면서 안말이나 건
이러한 영향으로 송정은 예전의 어렵
평보다 빨리 불황이 찾아왔다.
던 농촌의 실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당초 가난한 마을이었으면 모르지만
현대에 이르렀고 남산리 1구에 해당하
오랫동안 넉넉하게 살아온 마을 사람
는 열 개의 자연마을은 모두 금광에
들은 한꺼번에 찾아온 불황에 대하여
의지하여 살아가는 형태로 변했다. 농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고 금광의 대안
사환경이 불안하여 송정을 부러워했던
으로 새로운 사업에 눈을 돌리게 되는
남산골 사람들은 그동안 받은 서러움
데 그것이 양계사업이다.
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송정골에서
현재는 온 마을이 양계장이라 해도
는 송장만 치운다’
고 가난을 비아냥거
과언이 아니고 기업화된 대규모의 양
리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지만 송정골
계장이 즐비한데 이 마을에서 양계를
사람들은 어려워도 금광에 취업하기를
公州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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