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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 김구와 덕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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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가담했던 성헌(惺軒) 임한주(林翰周: 1871~1954)다.
덕잠서원 터는후손들의바람과는 달리날로잊혀져갔다. 게다가
서원터에민가가들어서고다시밭으로개간되는과정에서유허비마
저존재의의를잃어갔다. 이에1984년김구의15대손인김인관(金寅
觀)이주도하여유허비를신암면 종경리에있는김구의 묘소 아래로
옮겨새로세웠다.
새로세운유허비
는임한주의글을그대로쓰
49)
50)
고, 김인관이서원의설립으로부터훼철, 1984년비석을고쳐세우기
까지의 과정을추기(追記) 형식으로약술하였다. 본래의터를알리는
유허비가 제자리를 떠났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덕잠서원의3차에걸린중수기에따르면, 덕잠서원은서원의기본
배치, 즉①사우(祠宇), ②동·서양재(兩齋), ③강당, ④중문및외삼문,
⑤담장등을모두갖춘것으로보인다. 그규모라든지좌향등은발굴
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사우,
양재, 강당의명칭을제대로알수없다는점이다. 새로운자료의발굴
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6. 맺음말
지치주의도학정치의기수자암김구는예산이낳은저명한정치가
요학자요서예가다. 그가정계에서활동한기간은1513년부터1519년
까지 6년에 불과하다. 그는 짧은 기간에 선이 굵은 대인, 지도자의
49) 1942년에세웠던유허비의존재는현재로선알기어렵다. 땅에묻었을가능성
이 높다.
50) 비신은높이145㎝, 너비53㎝, 두께22㎝이다. 글씨와篆字는鄭光弼 15대손
鄭吉謨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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