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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사격장때문에이주한뒤,논으로만들기위해포클레인으로묻었는데,포클레인이



작업할수있는크기였다.뿌리가없는납작한돌이었다.



광암마을에는돌이많았다.
광암마을에는 돌이 많았다. 어디든 건드리면 돌이 나왔고, 주민들은 돌이 많기 때문에
광암(廣岩)이라는지명이생겼다고도하였다.돌은모두둥근자갈이었다.
광암지역은 지리적으로 단구지형에 해당되어 둥근 자갈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면담자
의견)
광암마을은농업용수때문에고생하였으나청천저수지물이넘어오면서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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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마을은 냇물도, 저수지도 없어 농업용수 때문에 고생하였다. 오로지 하늘에서 내
려오는물만이용하였다.1970년대에는웅천읍노천리두루다리에서부터4㎞에이르는
구간에 경운기로 돌리는 양수기 5대를 놓고 양수하여 물을 대기도 하였다. 원전재를 넘기
는일이었는데너무힘들어단1번만시행하였다.당시오두희씨가이장이었고,면사무소
의지원을받아시행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 죽청리에서부터 황교리에 이르는 구간에 경지정리가 이루어지면서
청천저수지물이공급되어농업용수문제가해결되었다.
서오개마을앞에는겨울에만물을저장하는저수지가있었다.
광암 마을 앞들에 경지정리를 하기 전에는 서오개 마을 앞에 저수지가 있었다. 이 저수
지의수심은약1~1.5m정도었는데,겨울에만물을저장하였다.가을에농사를마치면저
수지의수문을닫아물을저장했다가이듬해봄,모내기철이되면개방하여아래논에모
를 심고, 저수지 바닥에도 모를 심었다. 이후로는 저수지 기능은 없어지고 논이 되어 농사
짓는것이다.
이저수지도제방이있었고,문틀은시멘트로튼튼하게만들어져있었으며판자를끼워
수위를조절하였다.
이저수지는겨울철에마을어린이들이썰매를타는놀이터가되었다.겨울동안만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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