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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성장

남,
황춘연 님은 장수 황 씨로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 광암마을에서 4남 2녀중 셋째 아들로

1942년에 태어났다. 광암마을은 장수 황 씨 집성촌으로 최고 100여 호가 거주하였고, 타



성은 박씨로 3가구에 불과하였다. 마을 안에는 장수 황 씨의 정문이 2개나 있었고, 큰 은


행나무가3개나있었다.


아버지는어업과농업을하였고,논이몇마지기있었으나10여명의가족때문에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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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이부족하였다.
황교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난하여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농사를 지었고 아버
지와함께어업과농업을하였다.29세에이웃마을처녀와결혼하여1남3녀를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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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은수문안에있었는데할아버지가개답한논이었다.
황춘연님집에서농사짓던논은무성굴마을앞수문안에있었다.이곳은옛날바닷물
이드나들던곳으로할아버지가둑을막아개답했다는이야기가전하는,들의마지막논이
었다.그래서바닷물이많이들어오면바닷물이넘쳤고,홍수때에는물에잠겨농사짓기
힘들었다.수확량도많지않았다.
광암마을의정문은황인갑씨가관리하였다.
광암마을에는 장수 황 씨의 정문 2개가 있었다. 하나는 황정직의 정문이고, 하나는 황
유업의정문이었는데관리는황유업의종손인황인갑씨가하였다.주변에있던은행나무
도 황인갑씨가 관리하였다. 이들 정문은 공군사격장 때문에 웅천읍 대창리 접동굴 장수
황씨묘지앞으로옮겼다.
광암마을에는3개의바위가있었다.
광암마을에는 삼형제바위라고 하는 3개의 큰 돌이 밭에 있었다. 납작한 돌이었는데,
밭을 일구면서, 크기 때문에 그대로 남겨둔 돌이었다. 마을에서는 돌을 건드리면 안 된다
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광암이라는 마을 이름이 이 바위 때문인지는 마을 주민들도 알
지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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