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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종헌:마을 동계장이 잔을 올리고 삼배함
11. 내빈 봉헌:마을에서 초대한 귀빈들 중 희망자가 잔으로 올리고 삼배함(2016년에는
예산 군수, 지역구 국회의원, 문화원장등이 헌작에 참여 하였으며 면장 등의 면내 기
관단체장, 마을 주민들 중 희망자 등이 함께하였다.)
12. 음복:고사를 지낸 사람들이 복을 나누는 술을 나누어 마심.
13. 고사 풍장과 축제 공연:대동 고사가 끝나면 먼저 마을 풍장패가 흥겹게 풍장을 친
후 난타, 대중가요 등 당해 년도 계획한 공연을 이어감.
10. 종헌:마을 동계장이 잔을 올리고 삼배함.
봉림리 주민들의 칠석제에 대한 신앙적 의미는 아직도 남다르다. 봉림리에서 칠석
제가 단절되었던 13년 동안 27회의 악상을 치러 낸 후 칠석제를 다시 올리기 시작했
는데, 그후 13년 동안 단 한건의 악상도 치루지 않았다고 믿는 마을 사람들은 축제화
한 칠석제라 말하면서도 매우 경건하게 고사를 지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내빈 2인이 잔을 올리는 순서였다. 국회의원과 군수가 참
여하였는데도 이들의 헌작 순서가 마을 제관들이 초헌과 아헌 종헌을 모두 행한 후에
하게 하였다. 이 순서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소신 또한 분명하여 칠석제를 지켜 나갈
마을 사람들이 모두 행한 후에 중요 내빈이 행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이 매우 커 바꿀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3) 예산의 두레
전 예산군지에는 예산의 두레에 관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전통 사회의 예산은 현
대의 행정단위로 리 단위 모든 마을에 1~2개의 두레가 존재 했을 만큼 활발했던 것으
로 보인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 중에서 이른바 대동아 전쟁 직전인 1938년경부터
일제가 두레를 금하면서부터 쇠락하였다. 일제가 두레를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
기 위한 농업공동체가 아니라 민족정신을 이어나가는 주체로 보았기 때문이며 국가
전쟁 상황이라는 것을 앞세워 이를 금했던 것이다. 해방이 된 1945년부터는 다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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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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