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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전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된
였는데 묘의 잔디밭을 연장하듯이 정
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웃 마을
리하고 제사를 올리는 고사들을 놓아
의 젊은이가 부처모링이를 지나가다가
예전의 자연스러움이 너무 많이 바뀌
부처를 손가락질하면서 비웃었다.
었다는 점이다.
“저까짓 돌덩어리가 무슨 힘이 있어
서 그런 일을 만든단 말여. 다 말쟁이
효자문(孝子門)거리의 전설
덜의 장난이지.”
송정과 건평 사이에는 효자문 거리로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후 그 젊은이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효자의 정
의 손가락이 아파 아무 일도 할 수 없
려(旌閭)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되어버렸다. 썩거나 곪는 것이 아닌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 거
데 일을 하지 못할 만큼 아파서 의원
리에는 박씨 효자(朴氏孝子)의 설화(說
을 찾아갔지만 고칠 수 없었던 젊은이
話)가 전한다.
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다. 그리
가난 속에서 노부모를 봉양하는 박씨
고 그 점쟁이가 젊은이에게“아니, 왜
의 효심은 평소에도 남다른 데가 있었
부처님한티 손가락질을 하며 욕은 한
다 한다. 들이 넓은 노성리 방죽골에서
것이여.”
하고 본 듯이 말했다. 죄 없는
품팔이를 하여 연명하였는데 품팔이
부처를 흉보면서 손가락질을 했기 때
일터에서 좋은 음식이 나오면 자기 몫
문에 손가락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을 먹지 않고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
이 말을 들은 젊은이는 자신의 무례한
와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쌀밥을 안고
행동을 반성하고 점쟁이가 시키는 날
오면 밥이 식지 않았고 고깃국을 안고
에 부처모링이를 찾아가 고사를 올렸
오면서도 국물을 흘린 적이 없는 효자
는데 그것이 정월 초이래였다 한다.
였다.
이후 젊은이의 손가락이 씻은 듯이
그러던 중 부모가 노환으로 동시에
낫는 것을 본 사람들이 정월 초이레부
몸져눕게 되었다 가난 속에서 양부모
터 열나흘까지는 개인적으로 고사를
의 병구완에 지극정성(至極精誠)이었는
올리고 정월 보름날에는 마을에서 대
데 하루는 아버지가 잉어 고기를 먹고
동고사를 지내는 장소가 되었다.
싶다고 하였다. 여름이라면 어떻게라도
안타까운 것은 예전에는 입석이 셋이
잉어를 구해볼 수 있었겠지만 계절이
었는데 지금은 하나가 없어지고 둘뿐
한겨울이었다. 도무지 잉어를 구할 수
이라는 것이고 주변에 있는 개인 묘소
없는 박씨는 노성으로 품을 팔러 나갔
를 정비하면서 입석의 주변을 정리하
다가 돌아오는 길에 방죽의 물을 바라
JUL/AUGㆍ
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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