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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서도 산자락만 벗어나면 마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마을 주민들의 성향 또한 마을의
자연적인 여건을 닮았다. 1970년대까
지도 한학을 가르치는 서당이 셋이나
있었던 마을이다. 또한 한민족의 근대
사에 커다란 회오리바람이었던 대동아
전쟁이나 사변(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마을 사람이 부상을 입은 사람은 있지
남산리의 마지막 훈장 윤억중의 생
만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을
전 모습
자랑삼고 위안삼아 살아간다.
전통문화의 정신 속에 안정된 마을 송
송정의 마을 양편으로는 살포들과 엄
정골
말고개골이 있는데 산이 높지 않으면
송정골이 앉은 모습은 마치 세상에 자
서도 길쭉하게 자리 잡은 논밭 역시
신의 몸을 숨긴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
남모르는 곳에 감추어 두고 농사를 짓
장군봉에서 흘러내린 두 개의 산줄기
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사람만 숨어
중 오른쪽의 원형 산자락에 들어 있어
사는 것이 아니라 농토 역시 사람들과
서 논산과 부여로 이어지고 탄천면 소
함께하는 것 같다.
재지와 계룡면 소재지로 연결되는 지
방도가 남산리 한복판을 가르고 지나
금광으로 흥청였던 안골과 건평(남산골)
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지나면서도
장군봉의 오른쪽 산줄기에 의지한 작
이곳에 마을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
은 마을들은 논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이 들지 않는 외진 곳이다.
물이 적어 어려움을 겪어 온 마을들이다.
더구나 화정리 쪽의 들로 돌아가지
남산, 건평, 안골, 됨박골, 홍성골,
않으면 건평에서 작은 고개를 넘어가
부쳐당이, 큰맘골, 창고말(아래창고),
야 송정골로 들어가는데 이 길 또한
표수골, 두능골 등 무려 열 개의 작은
낮은 산의 날등을 S자 형으로 굽어가
마을이 있었고 지금도 남산, 건평, 안
기 때문에 마을과 지척의 거리에서도
골, 됨박골 등의 마을이 남아 있는데
마을이 전혀 보이지 않고 논산 들과
모두가 논농사를 짓기 어려운 땅이다.
연접한 마을 앞에는 작은 산줄기가 마
이러한 자연적인 영향은 동네가 번성
을을 감싸안은 듯하여 마을의 정면에
하지 못하고 마치 외딴 터에 몇몇 집
MAY/JUNㆍ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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