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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대부 춘추관사 좌참찬으로 증직되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그를 참찬공으로 칭하며 참찬공파의 파
조가 된다. 묘는 음봉면 동암1리 김해김씨 종산에 있다.
부인은 해주최씨(海州崔氏)로 정랑 최숙량(崔淑良)의 딸이다. 외아들 통사랑 김효창(金孝昌)과 외손
자 김윤(金胤)으로 후손이 이어졌다. 김윤은 세조 때에 무과 급제하여 경력(經歷-종4품)의 벼슬까지
올랐다. 지혜와 용기가 뛰어났던 김윤은 훈련원 첨정으로 재직할 때 세조의 행차를 시종했는데 세찬
바람으로 용기(龍旗)가 쓰러질듯하여 어가가 나아가지 못하자 그 깃발을 세워들고 행차를 계속할 수
있게 하였다. 세조가 크게 발탁하여 등용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졸하였으므로 왕이 몹시 애석해 하
며 관원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고 병조판서를 추증했다. 그 김윤이 숭례(崇禮)와 숭필(崇弼) 두 아들
을 둔 이후 김합의 후손들이 늘기 시작하였다.
그의 후손들은 음봉 대동을 중심으로 천안 직산, 예산, 평택, 충북 등 각지에서 살고 있다.
-김합의 묘와 재실-
[30] 원주김씨 김현증
| 金鉉曾
<1655년(효종6년)~1708년(숙종34년)>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원주김씨(原州金氏) 19세로 감찰공파(監察公派) 영인면 신봉리 지역 입향조
이다.
아버지는 김홍량(金弘亮)으로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김현증은 전농(典農) 부정(副正)을 지냈으며 참의(參議)를 증직받았다. 부인은 죽산박씨(竹山朴氏)
이다. 신봉리에 살아온 내력은 잘 모른다.
묘는 신화리 가족 묘역에 있다. 음력 10월 10일에 제사를 지낸다. 후손은 선장면 신성리, 인주면 밀
두리, 염치읍 서원리 등에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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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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