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6페이지

4페이지 본문시작

瑞山海域의 역사민속과 민중생활사
주 강 현
(제주대석좌교수·해양문화연구원장)
Ⅰ. 서산의 해안취락과 어민의 삶
1) 조선후기 : 호산록의 경우
2) 일제강점기 :
『한국수산지』
의 경우
Ⅱ. 서산의 해상교통
1) 운하
서창리
본군 남서안의 남단 결성군과의 경계에 있다. 북쪽으로 산을 등지고 전안(前岸)은 진흙땅이 멀리
펼쳐져 있고 앞바다는 모래 등이다. 안변(岸邊)에는 작은 돌을 가지고 축조한 방파제가 있다.
그렇지만 퇴조시에는 전부 갯벌이 된다. 인가(人家) 20호, 주민은 농업을 주로 하고 부업으로
어업에 종사한다. 부인은 대개 조개, 게 등을 채취하고 인근 마을로 행상을 다니면서 쌀이나 보리와
교환한다. 이 지역에서
(소: 오징어)와 새우가 난다. 연승(延繩)에 달린 먹이에 의존해서.
생천리
서창리의 서쪽 5-6町에 있다. 연안에 위치한 서창리와 큰 차이가 없다. 船場은 간만에 관계
없이 노출된다. 토지가 협소해서 겨우 수전(水田) 60斗落을 보유하고 구릉지 위에 인가 40호가
집단을 이룬다. 주민은 대개 각지로 출가해서 어업에 종사한다.
봉산리
생천리와 사기소리와의 사이에 있다. 뒤로 산을 등지고 앞쪽의 해안은 높은 갯벌로서 조수의
도달은 대조(大潮)시에만 있다. 인가 51호, 토지는 평탄하고 경지가 많다. 주민의 생활은 생천리에
비해서 조금 유복하다.
사기소리
봉산리에 접한다. 뒤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깊은 만을 이루더라도 갯벌의 지대가 높아서 삭망
(朔望) 양조(兩潮)시 외에는 조수의 침수가 없다. 부근에 인가 58호, 수전 3600요락(料落), 화전
2011_10

4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