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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철저히 따져서 바로 잡았다. 비록 미움을 받을망정 꺼려하
지 않았다.
일찍이 건원보(乾原堡) 권관(權管:종 9품 무관직)으로 있을 때는 오랑캐 울지내(鬱
只乃)의 문제가 오랜 동안 변방의 걱정거리였다. 공이 울지내를 잡아 오자 병사(兵
使) 김우서(金禹瑞)가 그 공을 시기하여 군사를 자기 마음대로 부렸다는 죄목으로
보고하고 상도 주지 않았다.
공이 건원보(乾原堡)에서 근무하는 동안 부친의 상사를 당했다. 분상했다가 3년 상
을 마치고 곧 사복시 주부(司僕侍 主簿:종6품직)가 된 지 겨우 반달 만에 조산만호
(造山萬戶:종 4품 무관직)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순찰사(巡察使) 정언신(鄭彦信)이
녹둔도(鹿屯島)에 주둔군의 군량을 자급하기 위한 밭을 만들고 공에게 그 일을 겸하
여 관할하게 하였다. 공이 둔전에서 일할 군사가 적으므로 여러 번 국경을 지키는
민병을 더 지원해 줄 것을 청했으나 병사 이일(李鎰)은 허락하지 않았다. 가을이 되
자 과연 대규모의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다. 공은 힘써 싸워 이를 막아냈다. 그 괴수
를 쏘아 죽인 뒤 추격하여 사로잡혀 간 둔전 군사 육십여 명을 구하여 돌아왔다. 그
러나 병사는 공을 죽여 자기 잘못을 감추려고 영문에서 목을 베려 하였다. 이에, 군
관 선거이(軍官 宣居怡)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술을 권하며 위로할 때 공은 정
색하며,
「죽고 삶이 모두 천명이거늘 술은 마셔서 무엇 하랴.」
하고 뜰 안으로 들어가 항변하며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자 병사도 기세가
꺾여 옥에 가두고 조정에 보고를 할 뿐이었다. 조정에서는 공의 무죄함을 살펴 백의
종군하게 하였다. 얼마 후 오랑캐의 목을 바친 공로로 용서를 받았다.
기축년(선조 22년, 1589년)에 선전관(宣傳官)으로서 정읍현감에 임명되었다.
경인년에는 서애가 힘써 조정에 천거하여 고사리첨사(高沙里僉使:종 3품 무관직)
로 승진하였으며 계급을 올려 만포첨사(滿浦僉使)가 되었으나 대관(臺官)들이 승진
이 너무 빠르다 하여 다시 고쳐졌다.
신묘년(辛卯年)에는 진도군수(珍島郡守)와 가리포첨사(加籬浦僉使)로 임명되었으
나 부임하기 전에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정 3품 무관직)로 뽑혔다. 이때는 이미 왜
적과 사이가 벌어져 있었다. 공은 이를 깊이 걱정하며 날마다 방비할 기구들을 보수
아산의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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