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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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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괜히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상습적인 사람들은 잡아서 훈방 조치도 하였고, 더러는 열
차표값을받기도하였다.
정종찬 씨가 도고온천역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인근 도고온천으로 신혼여행을 오는 사람
들도 많았고 한국통신 직원이나 그 외 기업체에서 연수나 세미나로 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을 이용해 오는데, 볼일을 마치고 귀가할 때에는 열차 좌석이
없는 경우가 빈번하였기에 이들은 열차를 이용하지 않고 단체로 버스를 임대해 천안역으로
가곤 하였다. 그 시절 연수를 위해 온 사람들은 서울에서도 오지만 대전이나 대구 등 아래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래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천안역에서 경부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이곳 도고온천역에서는 좌석을 끊을 수가 없으니 단체로 버스를 이용하
는 게 더 용이 하였던 것이다. 이에 정종찬 씨는 연수 온 기업체마다 찾아다니면서 귀가 하
는 시간대를 파악한 후, 천안역으로 출장을 나가 한분 한분 좌석표를 끊어 오는 서비스를
제공하여 모든 사람들이 도고온천역을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덕분에 작은 도고온천역
의 매출이 쭉쭉 올라가자 철도청에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경위를 파악하고 그 간의 노력이
인정되어지방철도청장상을받았다.
정종찬 씨는 부인 박학재와 결혼하여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당시에는 중매결혼을
하는 풍습이었지만 정종찬 씨는 연애결혼을 하였다. 같은 동네에서 살았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인사를하며지내지는않았던박학재도고등학교를졸업하고우체국서무과에취
업하여직장생활을하고있었다.어느해10월3일친구의주선으로아가씨들과직지사야
유회를 갔는데 그 자리에 박학재도 함께 갔다. 정종찬 씨는 야유회에서 오락을 하거나 게
임을 하면 일부러 박학재와 파트너를 하고, 주변에서 빙빙돌며 남다른 관심을 보였는데 박
학재도 결코 싫지는 않았다. 서로가 신뢰하고 믿음이 싹틀 때 온양관광호텔에서 결혼식을
하였다. 양가 부모님과 친지들의 축하를 받으며 부산 해운대로 열차타고 신혼여행을 갔다.
해운대 바닷가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즐겼는데, 둘 사이에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정종찬 씨는 개신교 신자로 교회에 열심인 신자였고 박학재는 가톨릭을 믿
어성당을다니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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