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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산고래가 한 마을이기 때문에 함께 일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먹어야 되기 때문

남,
에돼지를잡았고,주민들이모두모여일하였다.

부정을가려상여를메지못할사람은산에서일하고,나머지는상여를멨다.산고래에



서는관째로매장하는경우는없었고,시신을운반한뒤,관을빼서태우고시신만매장하


였다.매장할때는3번에걸쳐다졌다.먼저흙을1/3쯤넣고들어가어깨동무를하고,노


래를부르면서밟았고,2/3쯤에서밟고,지표면과평평한높이에서마지막으로밟았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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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고는줄로원을그려놓고,잔디를쌓아봉분을만들었다.
옛날에는 잔디를 파는 곳이 없었다. 잔디는 사람이 밟는 곳에 있었으므로 산길 주변에
있는잔디를떠다가묘를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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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고래마을에서는칠월칠석날샘제도지냈다.
산고래마을에서는 칠월칠석날 샘 제를 지냈다. 1960년대 말까지 지냈는데, 풍물을 치
면서지냈다.
6.25당시마을뒷산에인민군들이호를팠다.
6.25당시인민군치하에서,산고래마을뒷산에호를팠다.국군이배를타고상륙하면
막으려고 했던 것인데, 폭격을 피해서 밤에만 작업을 시켰다. 인민군 치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 사람도 있었는데, 주민들은 수복 후 보복하지 않았다.
모두무사하였다.
산고래해안에는방위병들이보초를섰다.
1960년대, 1970년대에는 해안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있었다. 산고래 해안에도 초소를
만들어놓고,방위병들이보초를섰다.보초서는방위병들이마을에서라면을끓여먹기도
하였다.해안에철조망을치지는않았다.
산고래마을에서는새마을운동을밤에많이하였다.
산고래마을에서는새마을운동을밤에많이하였다.산고래도여느마을처럼새마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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