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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다른 전설은 좀더 구체적이다.
계백이 황산벌로 출정하다가 이곳에서
쉬어 갔다는 것은 같은데 칼을 간 것이
부처모링이의 산과 들이 아니라 이 입석
이라는 것이다. 계백 장군은“나라가 어
지러워 전쟁터에 나가는데 칼이 들지 않
는다면 장수로서 도리가 아니다”
라며 큰
바위에 칼을 갈았다. 그리고 칼이 얼마
나 잘 드는지 시험하느라고 장검으로 칼
을 간 돌을 베었다.
장군의 한칼에 돌이 무처럼 잘리는 것
을 본 백제의 병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황산벌에 가서 장렬히 싸울 수 있었지만
결국은 패하여 많은 장졸들이 죽었다.
황산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가 장군
이 돌을 베던 장소인 부처모링이를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와 초막(草幕)을 짓고
살았는데 자신이 죽으면 가문이 끊어질
남산리 입석 전경
것을 두려워하여 이 입석 앞에 무릎을
꿇고 계백 장군에게 아들을 점지해 줄
편이 전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이
것을 정성으로 빌었고 오래지 않아서 득
남을 하였다.
비슷한 설화 2편을 정리하면 다음과
이후 아들을 두지 못하는 사람이 와
같다.
백제가 멸망하게 되는 황산벌의 전투를
서 백일 정성을 들이면 틀림없이 아들
위해서 5천 병정을 이끌고 출정하던 계
을 얻게 되었다 한다. 그 중에는 9대
백은 부처모링이에 이르러 부처당이를 숫
동안 독자로 이어 온 가문에서 이곳에
돌로 칼을 갈아들고 황산벌로 향하였다.
치성을 하여 아들 둘을 얻었는데 하나
그런데 계백장군이 황산성에서 패하여 죽
를 더 얻고 싶어서 작은 돌부처를 세
음에 이르자 돌부처가 둘로 갈라졌다.
우고 치성을 드렸더니 셋째 아들을 얻
부처가 둘로 갈라진 후에는 누구나 이
었다. 이후 이 마을 사람들은 이 입석
곳에 와서 소원을 빌면 소원을 이루어주
과 작은 돌부처를 일러 첫째 부처, 둘
었고, 특히 아들이 없는 집에서 소원을
빌면 아들을 얻게 되어 자식을 원하는
째 부처, 셋째 부처 혹은 일바위, 이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찾았다.
위, 삼바위로 불렀다 한다.
公州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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