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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고래마을사람들은나무하러가그말재로다녔다.어떤때는성주산으로도갔는데,성



주산은도시락을가지고가야했으며,너무멀어힘들었다.가그말재도높고힘들었지만그


래도 가까워 오후 2~3시경에는 돌아올 수 있었다.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았다. 나

무하러10여명이몰려다녔다.
마을처녀총각들이서리를많이하였다.
산고래 마을에서는 처녀총각들이 밤에 모여 놀다가 서리를 하였다. 서리는 감자, 고구
마,참외등이었고,친구네밭에들어가가져다먹는것이었다.오늘은갑네것을가져오면
내일은을네것을가져오는것이었다.다음날날이밝으면서리를해갔다고난리가나지만,
당사자들은다아는것이었고아무말도안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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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고래경희할머니라고하는분이안택을하였다.
옛날안산고래마을에살던경희할머니라고하는분이무당이었다.집에신당을차려놓
지않았지만,안택도하고,빌기도하였다.경희할머니는마을에서신뢰를받았다.비용을
많이받지도않고헌신적으로치성을드려주었다.
안산고래마을에는초분이있었다.
안산고래 마을에는 초분이 있었다. 김순규 님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초분을 했는
데,김순규님이초등학교를다닐때,10여세때였으므로1945~1950년경이었다.산에가
니까나래로둘러치고안에시신을모셔놓은것이있어,아버지께무어냐고물었더니초분
이라고대답해주었다고한다.안산고래마을에서는사람이죽어서염을한후,산에초분
을 해 놓고 3일 동안 기다렸다가 장례를 모셨다. 이때 염한 매듭이 터지면 살아나는 경우
가 있기 때문에 초분으로 모셨다고 한다. 김순규 님은 실제로 살아난 분이 있었다는 이야
기를들었다고한다.
산고래주민들은상이나면모두함께일했으며,시신은3번다져묻었다.
산고래주민들은상이나면자기일은하지않고,모두상가에가서일했다.안산고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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