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785페이지

289페이지 본문시작

위해필요한것은깨끗한바닷물과땔감용나무인데언암리는이두가지가모두가능했다.



그래서 리승만 씨는 언암리가 매우 살기 좋은 부자 마을이었다고 기억한다. 소금을 끓이는

?

솥에 갯벌에서 잡은 논게와 같은 게를 짚으로 묶어 넣어 익혀 먹기도 했다. 소금을 만드는


?
이들은 이런 아이들의 장난에 화도 내지 않고 잘 받아주었다. 화염은 불을 때서 만든 소금

이어서 천일염보다 3배 정도 비쌌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염을 고급 소금으로 인식했다. 마
을사람들에게는팔지않고다른곳으로보냈다고한다.
산수강에 올라오는 중선배는 상당히 컸다. 소금을 싣기 위해 온 배여서 정확한 양은 알
수 없지만 상당히 많은 소금을 실었던 기억이 있다. 장사를 위한 중선배도 가끔 들어왔다.
갈치,조기등을싣고온장사배는물물교환방식으로곡식과바꾸어주었다.커다란깡통에
생굴을 담아 싣고 온 배도 있었다. 배 주인 몰래 굴을 가져다 먹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287
그 배들은 군산이나 대천 쪽에서 올라온 배가 아닌가 한다. 산수강에서 올라가면 오푼강이
고 더 올라가면 개삼포이다. 그 위가 양릉 포구인데 사람들은 그곳을 통개라고 불렀다. 세
군데서 내려오는 물이 그곳에서 합해서 그렇게 불렀다. 산수둠벙에 바닷물이 들어와 가득
차면호수처럼보일정도로넓었다.
산수둠벙에서 마을 사람들은 천렵을 자주 했다. 이때 가장 많이 사용한 어구가 사둘이이
다. 삼각형 모양의 큰 그물인데 양쪽에 자루가 달려있어 족대와 흡사했다. 크기가 컸는데
중간에 자루가 달려있어 물고기가 들어오게 되면 자루로 모이게 되어 있었다. 물고기가 매
우 많아 천렵하는 마을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산수강에서는 논게, 능쟁이, 깍쟁이
는 해산물로 취급도 하지 않았다. 숭어와 같은 큰 고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산수둠
벙에는 멍석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어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 멍석처럼 넓이가 넓
어멍석바위라부르는데바위위에서잠도자고,농악놀이도하면서보냈다.
언암리곳곳에도부르는이름이있었다.둑안의마을을원안이라불렀고,수문이있던청
룡벌에서좀더상류로올라가면벗게라는곳이있었다.함씨들묘를쓴곳에는비석이많아
비석골이라불렀고,창령성씨들이살던곳은과거에절이있어서절골이라불렀다.마을에
서떨어진외진곳에고려장터가있었다.부모가늙으면그곳으로모시고가서우물을판후
며칠먹을음식과함께묻었다고한다.그래서인지그곳에서는땅을파면토기와같은그릇
종류가많이나왔다.앞에나온멍석바위를산수돌이라고도불렀다.그곳은마을부녀자들

28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