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50페이지

288페이지 본문시작

의 속진 중에서 가장 위치가 알려지지 않고 무관심 지역으로 남은 곳이 오늘
날 구진으로 불리는 남포현 마량진이니 만큼 마량진성은 사실상 학계에 베일
에 가려져 있는 셈이다. 조선 초기 전국 수군기지 축성 정책에 따라 마량진도
중종 5년(1510)에 축성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남포현 관방조에‘마량진은 본현의 서쪽 33리 지점에
있는데 우도수군첨절제사의 영문이 있으며, 그의 소관은 서천포이다. 첨절제
사 1명이 있다. 정덕(正德) 5년 경오년에 비로소 돌로 성을 쌓았는데 주위가
1,371척에 높이는 9척이며 그 안에 우물하나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1510년 축성된 마량진성은 웅천천 하구의 88m 야산의 남사면을 에워쌌고,
내탁의 방식을 사용했으며, 남벽은 바닷물에 접해서 축조한 삼태기 모양의
조선전기 전형적인 수군진성이다.
다른 수군진성에 비해 산의 높이와 경사도가 가장 높아 성의 내부가 가파
른 점이 특징이다. 현재 길이는 약 660m 정도로 전 구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정상부의 북벽은 산정상이어서 파괴의 손길이 덜 미치어 치성과 함께
석축이 잘 남아있으며, 동벽과 서벽의 아랫부분은 토성의 형태로만 남아있는
데, 최근의 웅천천 제방공사 때에 배를 대고 돌을 날라다 사용하였기 때문이
다. 그리고 바다와 접하는 남벽은 기단부의 석축만이 남아있지만 그 흔적을
파악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이 부분은 민가가 오랫동안 들어선
관계로 많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동문지와 옹성, 서문지와 옹성 그리고 성내
의 건물지로 추정되는 평탄지의 흔적이 잘 남아있다.
성의 하단부에서 정상부를 연결하는 동벽에는 그 바깥에 해자를 만들어 성
벽의 높이를 높게 만듦으로서 방어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렇게 내륙 쪽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남사면에 만들어진 마량진성에서 바다쪽이 아닌 내륙쪽
에 축성된 성벽(동벽)의 바깥에 해자 시설을 한 특징은 파지포영성 서천포영성
義禁府啓曰, 本府罪人李經漢, 以忠淸道藍浦縣馬梁鎭充軍定配, 啓下矣, 聞馬梁, 移屬於本道庇仁縣云, 藍
浦二字,以庇仁,改付標以入之意,敢啓
286!충청수영(忠淸水營)

288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