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83페이지

287페이지 본문시작

무를 해다가 선장장터에 팔았다. 닭욹음 소리가 시계인 시절, 초저녁에 우는 엉뚱한 닭
때문에 잠결에 지게를 짊어지고 고개에 이르러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엄동설한에 날
은 밝지 않고 한 가닥씩 나무를 빼서 불을 놓고 기다리다, 몇 시간을 일찍 깨었다는 것
을뒤늦게알기도하였다.
한지게를짊어지고가면잘받아야8원을받았다.수입을차곡차곡모은돈으로산허
리 땅뙈기를 산 것을 시작으로 돈을 모아 장가도 가고 내 땅도 늘려갔다. 그러다 장항선
철도가 농지를 지나가는 바람에 보상을 받고, 그 보상금으로 샀던 천안의 부동산이 10
년 만에 150배가 상승하게 됨으로써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고 노후를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방송작가를 하는 그의 딸은 아버지의 기구한 인생을 글로 남기고자 하
였지만, 스스로 너무나도 측은하여 딸에게도 살아온 생애를 말하기에 목이 메어 만류하
였다.
선장 지역은 물산이 풍부했던 만큼 교육수준도 높았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에 유학
을 다녀온 분들도 많았고 항일의식이 어느 지역보다도 높아서 3·1운동과 의식개혁 사상
이 팽배하였다. 공산주의 사상을 지녔던 지식층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6·25전쟁을 맞아
일부에서 마구 폭력을 휘두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전후에는 많은 후유증과 함께 상당
수가 마을을 떠나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평가받을 만한 항일운동에도 불구하고 좌익의
활동이라영영회자되지못하게되었다.
삽교천의 건립은 선장면에게 일대 사건이 되었다. 지하수로 농사를 짓던 데서 삽교천
민물의 유입은 북부에 40헥타르, 남부에 30만 평에 이르는 신생 농지를 조성시켰고, 그
로인해철저한농업지역으로변모하였다.그러나농경사회가산업사회로넘어가는과정
에이르게된현재는오히려퇴보되고낙후되어가는느낌이다.
사람이 많고 자연재해에 민감할 수밖에 없던 시절인 만큼 곳곳의 노거수와 산신제가
많았지만, 오래 된 나무가 쓰러지고 고령화가 지속되면서 단절된 게 많아졌다. 궁평리의
소나무 산신제는 나무의 고사와 함께 마무리되었고, 군덕리의 산신제는 5년 전쯤부터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 제관의 선정부터 주당의 몸가짐까지 엄격하게 지켰고, 산신제를
아산시 285

287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