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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조개를잡아가지고돌아오던마을사람들이갑자기비를만난적이있었다.천둥과번개



가 치는데 무척 무서웠다. 마을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바다를 빠져나왔는데 이상하게도

?

뒤처지는 마을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결국 해변에 도착할 무렵 바로 옆에 있는 바위에


?
벼락이떨어져죽었다.그사람을위해상여를매고바다를지나가는데한참을울었던기억

이 남아있다. 실제로 박정자 씨도 바지락을 캐는 재미에 빠져 물때를 놓쳐 죽을 위기를 몇
차례넘기기도했다.
명천3리는 대략 60-70호 정도 되는 마을이었다. 자연마을마다 이름이 있어 큰말, 개건
너, 우무꾸지라고 불렀다. 바다에 의지하고 살던 명천3리 사람들은 산에 서낭당을 모시고
고기잡이가 잘되기를 빌었다. 지금도 음력 초사흘에 제를 올릴 정도로 믿음이 깊다. 서낭당
제를 올리기 며칠 전에 다들 올라가 청소를 했다. 이때는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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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람이 참가했다. 치성은 반드시 부부가 함께 있는 사람만 드렸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먼
저 죽은 집은 부정하다고 하여 치성을 드리지 않았다. 시루떡, 조기, 미역국, 밥, 배와 사과
같은과일,전,청주를차리고제를올렸다.가장정결한사람이들어가상을차리면마을사
람들은밖에서지켜보다가차례로당에들어가정성을드렸다.당에는부처님같은큰그림
이 세 장 붙어 있었다. 당은 엄정하게 관리를 했다. 제를 올리는 날 이외는 당 문을 절대 열
지 않았고, 당 밑에 가서 나무도 꺾지 않으려 조심했다. 이러한 금기를 어기고 당 밑에 가서
나무를해온어떤집은벌전을받아손녀가꼽추가된적도있는데이를일러‘지골입었다.’
고 한다. 제를 올린 후 모든 음식을 마을 회관으로 가져와 나눠먹는다. 경비는 마을기금으
로했다.
마을기금은 마을에 초상이 나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도와주고, 그러면 그 집은 마을에 일
정액을 기부했는데 그것을 기금으로 삼았다. 오래 전에는 무당이 와서 치성을 주관하기도
했고 마을 사람들이 풍물을 치면서 한바탕 놀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주관하는집을도가집이라불렀다.박정자씨집도도가집을한적이있다.
명천리 사람들은 경 읽는 사람을 불러 굿을 하기도 했다. 경을 읽는 것은 마음 편안하라
고 하는 것이다. 상을 차리고 경쟁이가 신장을 모신 후 경을 읽으면 아픈 것도 나았다. 박정
자 씨의 시댁은 경쟁이를 자주 불렀다. 규모가 큰 굿은 큰경이라 했는데 그때는 10만 원을
주고 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10만 원도 엄청나게 많은 돈이다. 명천리 사람들은 밤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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