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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는 것을 보면
155)
구정이라는 명칭은 마량포 주변의 또 다른 명칭으로
보인다.
이 구정의 도만호영은 세조 때 진관체제와 수군체제의 정비가 이루어지면
서 마량진으로 불리고 경국대전에 공식적으로 기록된다. 마량진이 바다에서
웅천천 하구의 만구를 따라 내륙쪽으로 약간 들어온 곳에 위치한 관계로, 좀
더 바다쪽의 경계를 위하여 만구 건너편의 도둔곶에 분병수지(分兵戍地)를 설치
하여 마량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이는 전초기지 역할을 함과
동시에 내륙으로 통하는 요충지인 웅천천 하구를 양쪽에서 방어하는 체제도
갖춘 것이니, 당시 왜구침입에 대한 웅천천 하구지역 방어에 만전을 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강하구의 양쪽에 서천포영과 옥구진이 설치된 것
과 비슷한 현상이다. 도둔곶은 현재 충남 서천군 서면 도둔리이다.
(2)마량진의이설(移設)
백제시대 이래로 웅천천 하구가 대외통로의 요충지이면서 왜구의 빈번한
침입 때문에 웅천천 하구의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 광암에 설치되었던 마량진
은 입지의 불편성으로 인하여 성종 때부터 이전 논의가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성종 21년(1490) 9월 28일 정축조에,
도순찰사(都巡察使) 성건(成健)이 복명(復命)하고 서계(書啓)하기를,“남포(藍
浦) 땅의 마량(馬梁)에 정박(碇泊)한 병선(兵船)은 조수(潮水)가 차면 뜨고, 조
수가 물러가면 뭍에 있어 위급(危急)한 때에 쓰기는 어려우나, 적선(賊船)
도 또한 반드시 조수를 타고서 오게 되니, 이 때에 우리도 또한 응변(應
155)『조선왕조실록』,세종18년6월20일을유
282!충청수영(忠淸水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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