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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했다. 한때 6·25전쟁의 시련을 겪으면서 학업도 중단하고 청운의 꿈 또한 접어야 했
다. 이제는 오순도순 평온한 정분으로 살 수 있는 웃음꽃 피는 시골마을이 되었지만, 방
현리마을의이모든것은그들이지극정성애향심으로가꾸어온덕분이다.
이종배는 88세의 고령에 이르기까지 이 마을에서 태어나 딸 셋이 모두 출가하여 떠난
고향땅에서 아직도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에도 교육열이 높았
던 선친의 뜻에 따라 서울의 인창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하였지만, 6·25전쟁의 격변기
와 군복무 의무 때문에 중도에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단 3
년배운일본어를아직도유창하게구사하며정확하게써내려갈만큼정정한총기를잃
지 않았고, 마을의 자랑인 샘제와 정자나무 제사에서는 제관으로서 마을의 화합을 도
모하는일에선봉장역할을하고있다.
대동제사가 세월이 흐르고 관심이 멀어져서 단절되었던 것을 15년 전부터 뜻을 모아
부활시키기도 하였다. 매년 정월에 십시일반 모은 비용으로 제물을 마련하고 정성스레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식을 통해 하나가 된 화합의 장이 펼쳐진다. 샘제와
더불어 몇백 년 수령의 정자나무에도 제사를 지낸다. 이는 마을 큰어른에 대한 예경이
자마을사람모두에게건강한기운과새생명의영험을안겨줄것을약속받는의식이기
도 하다. 모두의 어린시절을 지켜봤듯 후손들의 모습 또한 지켜줄 것으로 믿으며 종교가
다르고 성씨가 다른 주민들에게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는 풍물에도
일가견이있어주민들을교육시켜여러대회에참가하기도하였다.
한상복은 평생 건장한 체격과 운동으로 다져진 씩씩한 기상으로 77세로 보이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 마을에서 호반식당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할 때에는 식당이 적었던 당시
에 마을 사람들의 회합장소 역할을 하도록 배려해 주었고, 염치읍과 방현리 마을이 앞
으로 더욱 발전하고 또 올바르게 존속하였으면 하는 바람에 많은 계획을 세워보기도 하
였다. 그러나 주장을 피력할 경우에는 선배이자 원로인 어른들과도 상의하고 극진히 예
를 갖추었다. 한때 16호가 거주하였던 인근 학대마을은 염치저수지의 조성에 따라 지금
은 물속으로 사라져 전설이 되었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아직도 마을 대동행사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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