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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쇠스랑으로꾸며보리도심고,고구마도심을수있다.



반면네골치기는외골치기한두둑에한번더갔다와서두둑을넓게만드는것이다.들


깨를심는다던가,마늘을심을때그렇게하였다.

쟁기질은논과밭에서모두하는데,밭에서하는쟁기질이훨씬어려웠다.
송학리에김발을처음맨사람은박용규(1925)님이었다.
송학리에김발을처음으로맨사람은밧산고래에살던박용규님이었다.박용규님이젊
었을때인일제강점기말,대섬앞에다가김살을매서성공을거두었다.그뒤많은사람이
참여하여보령최고의김양식장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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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식장은 12수문부터 송도분교 앞까지였고, 은포리, 송학리, 고정리 주민들이 김 양식에
참여하였다.
김 양식장은 대천간척지 12수문부터 서쪽으로 송도분교 앞까지 가능하였다. 이곳에서
은포리(주로간디뻘과안뻘),송학리,고정리주민들이양식을했는데,우선마을별로크게
구획을 정하였다. 12수문 근처는 은포리 간디뻘과 안뻘 주민들이 맸고, 그 서쪽으로는 송
학리현장,산고래,척굴,고정리,송도순으로맸다.
마을별로 매는 장소는 고정되어 있었고, 나누어진 마을 안에서는 매년 심지를 뽑아 양
식하는곳을결정하였다.심지를뽑을때는2줄단위(40떼)로번호를부여하여심지를뽑
았고,40떼미만으로양식하는주민들은몇명이모여40떼를채워심지를뽑았다.이렇게
양식장의질서를잡아준분이척굴에사는천씨였다.
양식장은낮은바다부터깊은바다까지한줄이되게하였다.
송학리산고래마을앞에는‘후내기’를쳐서고기를잡았다.
나일론그물이나오기전에,송학리앞바다에는성주산에서사온싸리로엮은후내기를
쳐서고기를잡았다.후내기는9~10줄을엮었는데,가운데는높고,가에는낮았다.무겁기
때문에물에띄워끌고들어가서쳤다.그리고고기가빠져나가지않도록아래에는갈구리
진나무를꽂아놓았다.가운데에는통발을설치하여고기가들어가도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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