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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들어있는구멍을쑤시면옆에있는다른구멍에서물이쑥나와두구멍이연결되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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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알았다. 어떤 구멍에서는 참게와 뱀장어를 동시에 잡기도 했다. 조개도 여럿 있었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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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조개라불리는것이유독많았는데마을사람들은맛이없다고먹지는않았다.사리가지

?

나게 되면 쌀조개가 유독 많았다. 크기가 1cm정도인 쌀조개는 하얀 색으로 재첩과 비슷했


다. 꺽쟁이, 갯망둥어 등도 많이 잡았다. 혼자 바다로 나가면 어른들이 걱정을 하셔서 여럿
?


이어울려나갔다.석포리앞바다까지나가대합을잡았던기억도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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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은서산장이나해미장을주로이용했다.장에갈때에는개삼포에놓인다리
로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이때는 모두 걸어 다녔다. 지게에 시장에 팔 물건을 짊어
지고 나갔다. 서산장에는 여러 어물들이 팔렸다. 한기송 씨가 기억하는 상품은 능게인 능쟁
이, 꽃게인 사시랭이이다. 이 둘을 이용해 게국지를 담가 먹었는데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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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가끔 찾아다니지만 옛 맛을 내는 곳은 찾기 어렵다. 장동 쪽은 갯벌이 상당히 넓어 염
전이있었다.갯벌을막아만든염전에서는소금을직접팔기도해김장철에소금을사러간
기억이 있다. 이 소금이 서산장이나 해미장에까지 팔렸다. 갯벌에서 소금을 만들기도 했지
만, 가야산 쪽에서 나오는 장작을 이용해 소금을 만드는 화염도 있었다. 이곳은 화염과 천
일염모두가생산된곳이었다.
개삼포를 비롯한 여러 마을에는 풍물이 있었다. 칠월 보름인 백중사리에 포구에 정박한
배에서 풍물을 치면서 굿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원안이라고 부르는 언암리에도 풍물패
가유명했고기지리,양림리등에도풍물패가있었다.한기송씨가나고자란양림리의풍물
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정월에 집집마다 풍물을 치고 다니면 각 집에서 쌀이나 술을 냈
다. 그러면 온 집안을 돌면서 풍물을 쳐주었고 장독대 앞에 가서는 빌어주기도 했다. 떡을
해내는 집도 있어 한바탕 잔치였다. 양림리에는 서낭당이 없었지만 이웃 마을인 기지리, 언
암리에는 서낭당이 있어 그곳을 지나갈 때 돌을 던져 빌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전통이 지
금도 남아있어 해미에는 해미풍물단과 다른 또 하나의 풍물단이 활동 중이다. 대통령상까
지받은풍물단이었지만현재는옛날만못하다.
옛날에는 천수만을 거쳐 들어와 한티고개를 넘어 공주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송
나라의사신도이길을이용할정도였다.대곡리에는사신들이숙박할수있는시설과정자
까지 있었다. 해미 현감이 거기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 정도로 이곳이 바다를 통해 접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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