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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불편함이없다.
임종순은 쌍죽리에서 태어나 유년을 지내던 중 아홉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외부
에서 경제활동을 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조차 흐려서 친구분들을 수소문하여 사진
을 구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끝내 찾지 못했다. 빈궁하고 어려웠던 시절인 데다 해방
이후 6·25전쟁까지 치르면서 그는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고, 면서기로부터 시
작된 공직생활은 아산군청 근무와 보건소 근무로 연결되어 후에 30여 년의 공직생활을
이어가는밑거름이되어주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서울의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에 다니는 노
력으로 이어졌다. 늦은 오후에 기차를 타고 상경하여 저녁을 굶으면서 공부를 하고, 수
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온양온천역에 도착하여 깊은 밤 오토바이를 타고 쌍죽리 시골 동
네에 밤 자정이 되어야 도착하였다. 결국 이 같은 노력으로 아산시의회 의원으로서 3선
의 의정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어진 경력은 아산의 도심과 근접한 지역임에도 교통이
열악한염치읍의구석구석마을길을확·포장하는데큰역할을하였고,농업기술센터를
유치함으로써 염치의 위상을 높였다. 큰 비만 오면 범람하는 염치천의 고질적인 지형적
난점을 개선하고자 삽교천의 수문을 증설하는 정책을 폈으며, 쌍죽리를 비롯한 시골마
을의 버스노선에 대한 재정비를 통하여 주민은 물론 지역 학생들의 등하굣길에 편의를
제공하는등세심한대책을마련해주기도했다.
임종순은 오십여 년을 쌍죽리에 살아오면서 통합 쌍죽리의 이장으로 시작하여 현재
도 1구의 이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외견상으로 보아도 이백 년은 족히 넘었을 마을의 느
티나무 정자목은 원래 어마어마한 둘레와 수령을 자랑하는 노거수였는데 어느 날 태풍
에 쓰러진 후 싹이 움나서 오늘에 이르렀으니, 쌍죽리 마을에 뿌리내린 지는 상상을 초
월할 마을의 수호신이자 큰어른과 진배없다. 분구가 되어 행정적으로 옆 동네일 수 있는
1구와 2구의 마을 주민들은 현재까지도 정월이 되면 몸가짐을 삼가고 정성스레 제를 모
시면서 두 마을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고 서로의 정을 돈독하게 가꾸고 있다. 떠나는
마을이아니라인구가유입되고발전하는마을을이루고자종교시설인혜명사의건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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