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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명재고택
(論山明齋故宅)
종학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논산명재고택(중요민속자료
제90호)이 있다. 명재 윤증 선생(1629~1714)의 연고가 닿은 이
고택은 조선 효종 때 지어 진 전통 기와집으로 노성산 옥녀탄
금형 명당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명재 선생의
어머니 공주이씨 정려각이 있다. 고택 왼쪽에는 노성향교가
우측에는 궐리사(闕
)가 위치하고 있다.
고택은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경북 일대의
사대부가는 물론 인근 동춘당 등 당시 양반가옥들과 비교해 보
면 매우 청빈한 주택이다. 사랑채는 바깥세상과 공개되고, 당
당한 형태를 갖추었지만 안채는 완벽히 폐쇄되고 무표정하게
느껴진다. 사랑채 앞에는 넓은 마당을 두고 커다란 연못을 조
성하고 그 사이에는 우물을 만들었고, 배롱나무와 벚나무가 심
어져 사철 운치를 더한다. 고택의 특징은 안채와 행랑채가 ㄷ
자형을 이루며 대청, 누마루 등의 배치가 검소하면서 품위가
있다. 사랑채에는 하나의 문이 미닫이와 여닫이가 모두 가능한
독특한 구조의 문이 있고, 손님이 오면 방을 나누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안채를 들어가기 전에 내외벽은 안채를 볼 수 없는 차단벽이 있어 하단 공
간으로 신발을 보고 신분을 짐작할 수 있게 되어있다. 아직 이곳은 명재 윤증 선생의 종손이 거주
하며 고택을 잘 관리하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항상 깨끗하고 고즈넉한 고택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 댁은 300년이 넘도록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교동 간장, 된장이 유명하기도 하다.
명재 윤증 선생은 조선시대 유학자로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등 고명한 학자에게 수학하였으
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숙종은 우의정 임명장을 전하니 수차례 상소를 올려 끝내 사양하
고, 고향에서 후진 양성에 힘써 백의정승으로 불리었다. 훗날 엄히 당부하기를“내가 죽은 후 선
비의 예절로 장사 지내고 명정에는 내 관직을 쓰지 말고 작은 선비라 쓰라”
고 하였고, 인근 산소
작은 묘비에 새겨져 있다.
따뜻한 봄날, 가족과 함께 논산시 노성면 일대 유적지를 찾아 고택에서 하룻밤 머물며 자녀들과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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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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