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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효열정려지
[18] 효자 맹흠규 <孟欽圭>
1735년(영조 11) ~ ?
선조(先祖) 본받아 지극한 효를 행하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효자이다. 본관은 신창이며 온양에 거주하였다. 아버지는 맹제원
(孟?遠)이고 어머니는 함양 박씨이다. 31세 때인 1765년(영조 41)에 진사시에 합격했
고 1805년(순조 5) 문과 별시 병과(丙科)로 합격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도 선조들을 본받아 지극한 효를 행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지금도 아산시 배방
면 중리에 그의 효행 정려와 효자비가 있다.
맹흠규 효자정려 현판 일부
맹흠규 효자리비
[19] 열녀 민씨 <閔氏>
남편 졸곡제 후 약 마시고 뒤 따라 죽은 여인
조선 후기의 효부이자 열녀이다. 선비 조의진(趙毅鎭)의 부인이다. 그는 시집을 온 후
시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시어머니의 병환에 옷의 끈을 풀지 않고 울면서 매일
같이 하늘에 빌었다. 그러나 마침내 시어머님의 상을 당하니 슬퍼함이 너무도 지극하였
다. 또 그의 남편이 기이한 질병을 앓게 되자 지성으로 간호하였으나 결국 죽고 말았다.
민씨는 억지로 죽을 마시면서 시아버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다가 겨우 남편의 졸
곡(卒哭-삼우제 뒤에 지내는 제사. 당시에는 대략 사망한 뒤 백일 전후)이 지나자 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그가 준비해 놓은 상자를 열어보니 이미 염습에 쓰일 수의(壽衣)가
모두 갖추어 있었다. 남편이 죽은 뒤 자신도 죽을 결심한 것이 이미 오래 되었던 것이다.
고을 수령과 수의(繡衣-암행어사)가 이 사실을 알고 모두 칭찬하고 가상히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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