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68페이지

28페이지 본문시작

공주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서당터를 지키며 사는 윤석조 씨 부부
인해서 어머니가 고생하는 모습이 안
쓰러웠던 아들은, 아버지가 다른 집안
의 자손들에게는 무료로 글을 가르치
는데도 정작 본인은 글을 배우지 않았
던 것이다. 그리고 힘써 농사를 지었다
한다. 글공부는 겨우 생활에 필요한 정
도만 하고 일을 열심히 하여 마을의
중농 이상의 살림을 일구고 그 집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결국 그도 나이
어 흥청망청하는데 불과 2km도 떨어
가 들면서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
지지 않은 송정에서는 서당이 한꺼번
지를 존경하게 되었으며 아버지에 대
에 3개나 생겼다. 그리고 3개의 서당
한 그리움을 풀기 위해서 아버지가 즐
모두 윤억중의 영향으로 돈을 받지 않
겨하던 시조를 뒤늦게 배우기 시작하
고 무료로 글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나
여 지금은 공주 시우회에 나간다. 그리
라를 빼앗긴 세상에 젊은이들에게 학
고 남달리 노력하여 이 곳 저 곳에서
문을 가르쳐 그들의 인생길을 열어주
열리는 시조 경창대회에서 상을 타는
는데 돈을 받을 수 없다는 마음과 돈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가정의 어린
조 선생 서당의 후손, 즉 조만손의
이와 젊은이들에게 학문의 길을 얼어
아들 조범호 또한 이 마을에서 서당의
주기 위해서 스스로 몸을 던져 봉사하
터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지만 최 선생
고 노력했다는 뜻이 된다.
으로 불린 최철창의 후손들은 모두 이
그런데 윤억중의 장남 윤석조에게는
마을을 떠났다.
참으로 의미 깊은 이야기가 있다.
집안이 어려운데 훈장인 아버지는 글
남산리 입석과
을 가르치면서도 돈을 받지 않았으며
계백장군의 전설
살림을 돌보지도 않았다. 결국 집안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졌던 것이다.
남산리 입석은 유적번호 공주 082-2
아버지의 이러한 처세가 마음에 들지
번이다. 그런데 거석문화의 상징인 이
않았던 아들은 독하게 마음먹고 글을
입석이 마을사람들에게는 부처로 보여
배우지 않았다. 아버지가 선비로서 돈
‘부처모링이’
라고 부른다. 특이한 점은
을 가벼이 여겨 살림이 궁하고 그로
공주시 일원에서는 계백장군의 설화 2
JUL/AUGㆍ
24
2008

28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