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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성장



김순규 님은 김해 김 씨로 주교면 송학리 안산고래 마을에서 1937년에 태어났다. 김순


규님집안이송학리로들어온것은할아버지때부터이다.할아버지는서천군에살았는데,

워낙빚이많아갚을수없게되어,밤에배를타고왔다고전한다.이후송학리안산고래
에서남의소작농사를지으며가난하게살았다.
김순규 님의 아버지는 4남 2녀를 두었고, 김순규 님은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제강점
기에 송학초등학교에 입학하였고, 6.25사변 때 6학년이었는데, 전쟁으로 학교에 가지 않
아 그대로 중퇴하고, 집에서 아버지한테 한문을 배웠다. 천자문과 명심보감 정도를 배웠
다. 이후 농사일과 김 양식을 하면서 생활하였다. 29살 때 이웃 마을에 사는 처녀와 결혼
하여4남2녀를낳고유복하게생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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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소작으로농사를지었다.
할아버지는 가난하여 일본인 소유의 고정리 간척지 3마지기와 밧산고래 논 4마지기를
소작으로 얻어 지었다. 김순규 님 기억으로, 하루에 2번씩 살포를 들고 논에 다녔다. 돌아
가실때도살포를들고논에다녀오다쓰러져서돌아가셨다.
해방후,일본인소유의간척지논3마지기를불하받았고,밧산고래논도소유하였다.밧
산고래논은물이잘나오는논이라농사짓기좋았다.
고정리간척지논은저수지물로농사를지었다.
고정리간척지의논은저수지물로농사를지었다.송학리척굴고랑에서내려오는물도
있었으나양이적어,척굴양지뜸앞이나,조금나루앞에물을대기도버거웠다.간척지논
들은 모두 저수지 물을 이용하였다. 간척지에 논을 가진 사람들은 수리계를 조직하여 운
영하였고, 대표자는 수감이었다. 봄에는 모든 작인들이 출동하여 수로를 정비하였고, 가
을에수확하면1마지기당벼5되씩을수세로냈다.수세로수감에게수당을지급하였다.
날이 가물어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면 물이 흐르지 않았다. 이때는 물길을 내고, 두레로
퍼내물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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