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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들이 점차 늘어나서 1구에서 4구에 이르도록 분구가 되었다. 마을에 사람들이 늘어
나면서 신생 사찰 봉수사도 들어오고 교회도 들어섰지만, 이 지역의 신앙은 오로지 천
년 고찰 봉곡사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는 공주와 예산에서도 찾아왔
던 봉곡사의 사월초파일은 한바탕 축제였으며 볼만한 장관이었다. 송악의 다섯 실로 불
리던 옆 마을 느릅실은 그 많았다던 느릅나무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외지인들이 8할
에이르면서사람얼굴이바뀌었다.
적지미는 유곡리에서도 그나마 널찍한 들판이 있어서 쌀을 쌓아놓고 산다는 이름을
가질 정도로 예전부터 살 만한 동네였다. 그래서 땅을 팔고 떠나는 이도 없고, 빈집이 없
으니들어오는이도없어서김씨이씨박씨가살지언정모두가한형제요한가족인동네
이다.
요즘 보면, 마을마다 크고 작게 제사를 지내고 있고 그 형태도 다양하다. 적지미는 매
년동짓날에즈음하여마을제사를모셔왔다.요즘은현대사회에맞게동짓날후에맞이
하는 일요일을 택한다. 날짜가 정해지면 전날에는 마을 입구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 출
입을 엄금한다. 밖에 나가서 사는 아들딸도 들어올 수 없으니 대소사가 있다면 미리 연
락을 취하여 그날만큼은 철저하게 삼가고, 이는 온 마을 사람들이 불평 없이 준수한다.
제관으로 정해진 사람들이 몸가짐을 정갈히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마을에서 음식
을 준비하는 여인네들 또한 혼자된 몸이라든지 최근에 부정한 것을 보았던 이도 배제된
다. 하여 온 동네 사람들은 새우젓이 들어간 김치를 일주일 전부터 먹지 않는다. 오로지
깨끗한 사람, 하자가 없는 사람이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모은 깨끗한 돈으로 깨끗한
제사음식을마련한다.
초헌 아헌 종헌과 소임자 둘이 산에 올라가서 현장에서 메와 국을 직접 지어 올리고
산신제를 마치고 나면 마을 정자나무에 와서 금줄을 치고 소지를 올리면서 술과 시루떡
을 올린다. 이 시루떡은 한해의 복을 듬뿍 담은 떡인지라 모두가 나누어 먹으며 즐거움
을 더한다. 산신제와 노성제는 철저하게 남성들만으로 진행되며 여성들은 모든 제가 끝
날 때까지 마을회관에서 대기하고, 부정한 요소 때문에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 남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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