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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서산천수만의옛모습
◆갈마리
다른 마을과 달리 이 마을은 개펄의 경사도가 급해 개펄이 드러나는 시간이
짧다. 이에 굴 채취의 방법이 다른 마을과 다르다. 굴을 직접 개펄에서 채취하
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양을 채취해야 하므로
여러 개의 굴이 붙은 굴뻑을 따서 집으로 옮기고, 밤을 새워 그것을 깐다. 물때
가짧기에고안된방법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마을에서는 흔하지 않은 또 다른 방법의 굴 채취법이 있다.
겨울철에 바다가 얼었을 때에만 행하는‘벌굴’이 그것이다. 벌굴은 인근 마을
의 굴밭에 얼음이 얼면 바위에 붙은 굴이 바닷물이 언‘성에’붙어 함께 얼어
붙었다가 그것이 물살에 밀려 떠밀린다. 개펄에 돌아다니다가 일정한 공간에서
녹으면 굴이 수북하게 쌓인다. 이러한 굴이 벌굴인데, 이를 두고“벌굴은 성에
가 물어 날랐어.”라고 표현한다. 대두리나 봉락리의 굴이 얼음에 붙어 떠밀려
왔지만 벌굴은 주인이 없으므로 누구라도 주우면 된다. 갈마리에도 굴밭이 많
았지만‘새마을굴’이라 하여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어촌계가 굴밭을 조성하
고 관리했기에 함부로 굴을 채취할 수 없었기에 벌굴은 굴 채취에 있어 좋은 대
상이었다.그양도제법많아하루에2~3바구니정도를깔수있었다.
이 마을에서는 인근 마을에서 굴을 깔 때에 사용하는 목신과 꺼적을 사용하
지 않았다. 창리에서 시집온 제보자는 창리에서 14세부터 굴을 캐기 시작했는
데, 당시 부친이 직접 목신을 만들어 주어 그것을 신고 꺼적을 쓰고 겨울철에
굴을 깠으나, 19세에 시집와 보니 이 마을에서는 둘 다 사용하지를 않았다고 한
다. 이러한 양상은 굴을 직접 굴밭에서 까지 않고 굴뻑을 주어다가 집에서 까는
작업 방식과 연관 깊다. 굴을 많이 주워 날라야 했기에 목신과 꺼적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창리에서는 겨울철에 굴을 채취하려면 버선을 신은 발
위로 짚을 감싸서 묶고, 짚신을 겹쳐 신었다. 때문에 굴을 채취하는 옆에 불을
피워두고 그곳에서 발을 녹이며 작업을 했다. 제보자는 꺼적 치는 마을은 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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