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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병인박해와선교사의순교·순교자이외의처형상황
갈매못 순교 성지는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바닷가에 있는 천주교 순교성지
이다. 1866년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행해진 병인박해 때 안 다블리(Daveluy) 안
토니오 주교, 민 위앵(Huin) 루까 신부, 오 오매르뜨(Aumaitre) 베드로 신부, 장주
기(張周基) 요셉 회장, 황석두(黃錫斗) 루까 회장 등 5인의 성인(聖人)이 순교한 곳
이다.
안다블뤼 안토니오 주교(49세)는 프랑스인으로 1866년 3월 제 5대 조선교구
장으로 임명되어 충남 서부지역 포교에 전념하던 중 황석두(53세)와 함께 당진
지방에서 체포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인 오 오매르뜨 베드로 신부
와 역시 프랑스인 민 위앵 루까 신부(30세)도 더 많은 신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자수하였다.
이들은 모두 서울 의금부로 압송되어 가혹한 문초를 받은 뒤 군문효수형이
확정되었다. 처형 장소는 해읍정법(該邑正法) 즉 범죄가 발생한 고을에서 범인
을 처벌하는 원칙에 의해 호서 지역에서 처벌하는데, 호서 지역에서 군문효
수를 시행할 수 있는 곳은 보령의 충청수영이었기에 이곳까지 끌려와 갈매못
에서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장주기 요셉(63세) 회장도 그들과 함께 순교
할 것을 결심하고 스스로 죄인 행렬에 참가하여 함께 3월 30일 처형되었다.
이들은 처형되는 순간에도 편안한 표정과 단정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이 땅의 천주교 번영을 하나님께 기원하며 죽어갔다고 한다.
이들의 유해는 3일 뒤, 황석두는 가족들에 의해 연풍으로 안장되었고, 나
머지 4명은 사형장 부근에 매장되었다가, 남포 서지골(현재의 미산면)로 이장되
었고, 1882년 일본의 나가사키로 옮겨졌다가 천주교 포교의 자유가 인정된
후인 1894년 서울 용산 신학교를 거쳐 1900년 서울 명동성당 지하실에 안치
되었다. 이어서 1967년에는 절두산 순교 기념관에 안치되었다.
조선 말기 병인박해 때 국내신도 8,000여 명이 처형되었고 프랑스 선교사
274!충청수영(忠淸水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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