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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적을 두고 활동한 유일의 풍장패이다. 북을 잘 쳐 박상쇠의 풍장판에서 풍장을 치
기 시작했다. 예산에서 출생하여 평생을 살았다 하나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장사를
하던 수완으로 박상쇠 풍장패의 총무처럼 일을 했고 보부상에 관련된 사람들은 김종
욱이 나오면 점심과 막걸리는 얻어먹는다고 기억하고 있다.
1900년경 출생자로 박상쇠 풍장의 열두발 상모꾼이다. 마을에서 상모꾼으로
이한구
활동했던 이한구는 쇠를 배우고 싶어 박상쇠 풍장패에 48년 가입하였으나 박상쇠의
권유로 열 두발 상모를 돌렸다. 이한구가 열 두발 상모를 돌리기 전에는 박상쇠가 직
접 열 두발 상모를 돌리곤 하였으나, 이한구의 예능이 좋아진 후로는 그 혼자 돌리게
되었고 실력이 나날이 늘어 예산, 덕산의 최고 열 두발 상모꾼으로 일컬어 졌다.
상쇠에 능하여 덕산 최고의 상쇠잽이로 활동하였으며 고
장인환(1923년 생. 남자. 사망)
사 축원, 청춘가, 노랫가락, 창부타령, 양산도, 태평가에 능했으며 노년에는 일반 트롯
가요을 배워 즐겨 부른 인물.
장구에 능하였으며 옥계리 최고의 소리꾼이다. 이종원의
유기봉(1919년 생. 남자. 사망)
사돈(이희철의 장인)으로 춤을 잘 추고 흥이 좋아 장구를 신명나게 쳤다.
북에 능하여 덕산 최고의 북잽이로 활동하였다. 상쇠 장
이종원(1923년 생. 남자. 생존)
인환과 동갑 친구로 언제나 함께 즐겼음. 고사 축원, 청춘가, 노랫가락, 창부타령, 상
여소리, 회심곡, 두레 논매는 소리의 선소리꾼 등에 능한 인물.
봉림리 두레 마지막 좌상이며 상쇠잽이로 논매는 소
김용재(1896년경 출생. 남자. 사망)
리의 선소리꾼이기도 했다.
마을 고사 풍장과 두레 풍장의 마지막 상쇠잽이.
이돈구(1926년경 출생. 남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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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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