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23페이지

273페이지 본문시작

아산시(온양)
271
박병화 씨가 23살 되던 초여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제대로
먹지도못하고남의집험한일만하시다건강이악화되어병원치료도제대로못하시고돌
아가셨다.어머니의장례를치르고며칠후군에입대하라는입영통지를받은박병화씨는
군대 생활하면 끼니 걱정은 안 하겠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반가웠다. 만 4년을 군생활 하고
제대하여 고향에 와 보니 예당저수지 댐공사로 인해 신양면, 대흥면, 응봉면, 광시면의 논
토와마을이수몰되어저수지로변해있었다.이로인해박병화씨네의논과밭도수몰되어
일정금액 보상금을 받아서 친척들의 도움으로 이웃 마을에 허름한 집과 약간의 논을 구입
하고큰형과농사를지었다.
27살이 다 지나가던 날 옆집 아줌마의 중매로 한번 만나보고 안마당에 흰 천막을 치고
결혼을 하였다. 형님 내외와 동생들이 있어 신혼방은 따로 없었다. 박병화 씨는 아내를 데
리고 하루라도 빨리 제금나고(분가하고) 싶었다. 마분침 사촌형의 알선으로 아산군 도고면
신언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동생이 제금난다고 하자 형님 내외는 여기저기 융통해서 쌀
10가마를 해 주었다. 도고로 이사 온 박병화 씨는 월세방을 얻고 사촌형이 소개해준 남의
논을 소작하였다. 약 2년의 소작논을 지을 때 철도청에 근무하던 사촌 매형의 소개로 선로
반 시험에 응시하였다. 서울 용산철도청에서 30명을 선발하는데 약150여명이 응시하였다.
1차 시험 과목은 원형 쇠바퀴를 양손으로 들고 장애물을 건너는 것과 80kg 나가는 침묵을
메고 옮기는 체력시험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체력 시험에서 떨어지고 2차 면접까지 오는
사람들은 20여 명 뿐이었다. 체력만큼은 타고났던 박병화 씨는 체력시험에 통과하고 철도
선로보수에 관련된 기본 상식을 물어보는 면접에서도 막힘없이 답하면서 철도청 천안 보선
반에입사하였다.
박병화씨는다행히철도청천안보선사무소에도고온천역으로발령받았는데집에서걸
어다닐수있는거리였다.첫출근인사후반장,선로장,부선로장,선로보수원이라는직책
으로 한 팀에 총 9명이 일을 하게 되었다. 오늘 해야 할 작업지시서를 받고 작업에 필요한
공구와 용구를 챙겨 핸드카를 타고 작업 현장으로 이동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타고

273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