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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명성에 비하여 조사는 미흡하며 현재 재현 가능성이 높은 점에 비추어 더 늦
지 않은 시기에 상세한 추가 조사를 요하는 인물이다.
1893년경 태어난 시량리의 풍장잽이며 재주꾼으로 송창용의 아버
송국현(아명 귀남)
지이다. 마을에서는 그를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입으로 내는 휘
파람 소리 형태의 구음이 탁월하여 ‘입소리로 옥퉁소를 이기는 사람’으로 회자되었다.
풍장판에서는 징잽이로 활동하였으며 건립패의 앞소리인 고사축원 소리꾼이다. 자
신의 재주를 자랑하는 것을 즐겨하지는 않은 인물로 박상쇠의 풍장판에서는 공연하지
않았다.
1896년생으로 시량리의 풍장잽이, 소리꾼이다. 소리는 축원덕담을 잘하였
인건배
다. 현재 예산에서 활동하는 인건배(풍장, 소리)와는 동명 이인이다. 덕산면내 대표 풍
장단의 수상쇠로 동생 인동배와 함께 시량리 풍장을 이끌었다. 장구는 박갑돈, 인건
배, 북에 어일담, 징에 이국선과 함께 활동하였다. 시량리 풍장이 덕산을 대표하는 풍
장이었으나 인건배의 이른 사망으로 쇠락하여 갔다. 이때 등장하여 1980년대 초까지
왕성하게 활동한 박상쇠로 인하여 시량리 풍장이 마을풍장으로 전락하였다. 마을 사
람들은 인건매의 이른 죽음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술을 마시지 못하면서도 신명이 좋았고 기운에 매우 쎄 장사소리를 들었다. 마음이
후덕하여 이웃 간에 화목함을 소중히 하였으며 마을에서는 싸운 사람들 화해시키는
사람으로 회자되었다. 평생 농사를 생업으로 6남 3녀를 두었고 1951년 상가집에 음식
을 먹고 급한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그의 자녀 중 9번째 자녀 인종명이 예덕 상무사
보부상놀이 보존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종명은 20대 초반에 아버지의 축원을
찾아 맥을 잇고 있다.
박상쇠 풍장단의 짧은 상모 우두머리로 1900년경 출생하여 일제강점기에
한두영
주로 활동하였다. 본인은 짦은 상모를 돌리고 열 두발 상모는 공연 한 적이 없으면서
2장 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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