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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 김구와 덕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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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잠서원 사액 현판
덕잠서원은자암김구를단독배향하였다. 김구와관련하여독향서
원은전국에서덕잠서원이유일하다.
38)
뒤에영조때후재(厚齋) 김간
(金?)을 덕잠서원에 배향할 것을 청하는 예산 유생의 소청(疏請)이
있었다. 이에대해영조는“선현을높이는일은사우(祠宇)를건립하고
합향(合享)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39)
김간은 일찍이예산현감으로부임, 선정(善政)을베풀어칭송을받았
었다. 영조가 김간의 추배(追配)를 허락하지 않은 이유는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김구의 문인 제자나 사숙인(私淑人)이 아닌, 단순히
예산과 관련 있다는 점만으로는 어렵다는 취지라 하겠다.
덕잠서원은 건원(建院) 뒤 모두 3차례의 중수가있었다. 중수기 필
사본이 남아 있어서 중수의 이모저모를 살필 수 있다. 제1차 중수는
37) ?杞園集? 권27, ?禮山德岑書院自菴金先生 絿 奉安祭文? 참조. 날짜는1715년
1월 28일로 되어 있다.
38) 1705년이전인 1664년(현종 5) 3월에전라도 臨陂의鳳巖書院이건립되었다.
신독재 김집을 모시는 서원이다. 2년 뒤인 1666년(현종 7)에는 文懿公 자암
김구가 ?享되었다(?愼獨齋全書? 권16, 附錄, ?年譜 下? 참조). 임피는 김구
의謫居地 가운데하나다. 1531년경상도南海에서이곳임피로옮겨져1533
년 4월 사면될 때까지 귀양살이를 하였다.
39) ?英祖實錄?, 영조 8년(1732) 10월 17일(辛未)조 “忠淸道禮山幼學辛大遂等上
疏, 請以故參贊金?配享于本邑所在己卯名賢金絿之書院. 批曰: 尊賢之事, 不
在於建祠合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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