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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 명씩 모여 21명으로 구성된 대동번영회를 통하여 해결하였다. 한때 그는 대동번영회
의 회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큰 도로가 개설되어 마을의 상징이자 터주인 구리바위
가 상할 위기에 있을 때도 차라리 길을 비껴가도록 목소리를 합쳤고, 마을마다 전통을
이어가는 장승제와 산신제에도 찾아가서 기원을 함께 하였다. 투명하고도 치밀하게 짠
계통문을 통하여 후배들이 일처리를 함에 지침이 되도록 하였으며, 수고한 자 칭송받고
손해 보는 이 없도록 낱낱이 기록을 하였다. 어언 일백 년에 이르도록 장부며 문서를 보
존하였는데,지금은그것이마을의보배요자부심으로자리하게되었다.
그는 흙길을 걸어 천안까지 학교를 다녀야 했고 왈패들의 해코지를 두려워하면서도
개목고개를 넘어 천안장을 다녀와야 했다. 그러던 시골마을이 대동저수지가 생긴 후 밭
이 논이 되어 부자들이 늘어났고 공장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서고 대학교가 입주하는
가운데 아산에서도 번듯하고 풍요로운 마을이 되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이장이라
는 명패 아래 청춘을 바친 만큼 그는 이제 멋들어진 양옥집들이 개성을 발휘하는 원동
암을자랑할수있게되어더없이보람을느끼고있다.
국도 628호가 개통될 때도 마을의 힘으로 구리바위는 온전하게 보존이 되었다. 구릿
빛이 감도는 바위는 두드리면 쇳소리가 난다고 했는데, 옛날에는 바위 위에서 조개를 땄
다고도 한다. 아랑각시의 애틋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수백 년 살아온 향
나무만이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을 터이다. 이 바위 이름을 따서 마을은 동암이라는 마
을명을 얻었다. 마을에서는 장승과 함께 깊은 정성으로 바위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 마
을 입구에서 동네 사람들의 기원을 해결해 주시던 장승님은 굉음 울리는 아스팔트 도로
를 피하여 구리바위에 안락하게 서 계시며 3년 전부터는 아예 돌로 조성한 석장승으로
모시었다.이제는격년으로모시는노승제는한쌍을나무로깎아서제사당일이면마을
의 집집마다 방문을 하고 심지어 안방까지 들어가 온갖 액운을 떠안는다. 바지저고리의
동정을 뜯어서 매어달면 그 한해의 액운은 장승님이 모두 해결을 하고, 기꺼이 십시일반
성의를 표시하면 모든 비용은 저절로 충당된다. 정월대보름에 즈음하여 택일을 하여 마
을에초상이나거나부정의요소가발생하면굳이성스러운제사를치르지않고미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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