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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현재의 북잽이. 김기홍 외 6인이 함께 배워 북을 친다.
[징]
이병일:1919년경 출생, 남자, 사망. (이상 이 책 뒤 예산의 풍장인들 참조)
(3) 예산덕산장 박상쇠의 장터풍장
예산장 덕산장 모두 풍장을 많이 치지 않았다. 박상쇠가 풍장을 가르쳐 다시 장터
풍장을 일으켰지만 장날마다 친 것은 아니다. 농번기에는 치지 않다가 덕산과 예산의
백중장(백중 직전 장날)날은 반드시 풍장을 쳤다 한다.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까지 5년
동안은 장터에서 풍장을 치는 빈도가 높았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장에서 치는 풍
장의 맥은 약화되었으며, 1955년 이후 백중 전 장에 1~2회 치는 정도로 이어지다가
1957년부터는 박상쇠의 풍장패가 인원이 많아지고 기량이 좋아져 가을일이 끝나고
나서 봄 일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거의 장날마다 풍장을 쳤다 한다. 1960년대 들어서
면서 예산군청에서 개최한 풍장대회를 비록하여 각종의 풍장 대회가 성행하면서 약화
되기 시작하였다.
박상쇠 풍장단이 각각의 마을풍장을 대표하여 풍장대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5~6년
후에는 상을 타는 것을 중요시하는 풍토가 생기면서 일부 면에서는 각 마을에서 우수
한 풍장꾼들을 모아 면 대표 풍장패를 출전시키는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사회
문화적 흐름은 풍장패 개인 간의 경쟁심을 부추겨 박상쇠 풍장을 소홀히 하게 되었
고, 결국 박상쇠의 장터 풍장은 완전히 중단하였다.
박상쇠가 가르쳐 성행하였던 풍장의 가락과 판재는 송창용, 맹근섭, 김종욱 등이 박
상쇠에게 직접 풍장을 배웠고 이들이 현재까지 활동하기에 비교적 정확하게 조사 할
수 있었다. 위 세 명의 인물들에게 들은 증언과 현장에서 친 풍장을 중심으로 정리하
였다. 단 3인의 제보자자 모두 연령이 높아, 가락이나 판재에 대하여 기억하지 못하거
나, 기억은 하나 연행을 못하는 부분, 의견이 일치하니 않는 부분도 있었다. 3명의 의
견을 각각 들어 정리하는 교차 조사를 중심으로 하였다.
2장 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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