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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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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중풍으로 몸 한쪽을 못 쓰는 형편이었고, 어린 동생들이 많았고, 어머니는 곧 아이를
출산할예정이었다.이런친정집사정때문에시어머니에게는미안하였지만,친정으로오게
되었다.
이후 남편은 친정집으로 찾아와 만나곤 하였고, 아이를 잉태하였다. 이 아이는 1950년 9
월(음)에태어나아버지를한번도보지못하고성장하였다.아이를낳을때도혼자낳았다.
남편이징집되어전사하였다
결혼 후, 1950년 3월쯤 남편이 징집되었다. 봄에 징집되었다고 하므로 아마도 6.25사변
이전에 징집되고, 군에 입대한 상황에서 전쟁을 맞이하였다. 이후 강원도 춘천에서 사망해
서 전사통지서와 함께 화장된 유골함이 도착하여 장사를 치렀고 현재까지 묘지를 관리하
고있다.
그녀의 남편 전영준은 입대한 후 한 번도 휴가오지 않았고, 입대한 후에 낳은 아들(1950년
생)을한번도만나지못했다.
보령시지의기록에의하면전영준은하사로1953년3월21일원통에서전사하였다.(면담자)
12살먹은여동생도죽어애장을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2살 먹은 여동생도 사망하였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약을
사다 먹이기는 했으나 낫지 않고 그냥 죽었다. 당시 아이들이 죽으면 밤에 내다 묻었다. 묘
를 돌볼 수 없기 때문에 평장으로 후미진 곳에 그냥 묻었다. 당시 애장을 하면 여우가 파헤
치곤하였다.
지월순씨가네식구의가장이되었다
지월순 씨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남편까지 전사하였으며 남
은가족들을모두책임져야하는가장이되었다.동생은남동생하나와여동생하나가있었
지만 어렸고, 그녀가 낳은 어린 아들도 있었다. 지월순 씨 혼자 일해서 네 식구가 살아야 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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