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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4
사망자 중 처녀들 5명은 공동묘지에 구덩이를 파고 나란히 묻었다. 후손이 없기 때문에
묘지를 돌볼 사람이 없어 집단으로 묻은 것이다. 이 묘지는 후에 처녀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무서운곳이되었다.
지월순씨가기억하는당시사망한사람의이름은김순영과어린년이다.
생명을구해준사람과결혼해야된다고하여결혼하였다
사고가 난 뒤, 온 마을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시집가야 된다
고 하였다. 마을의 공론이 된 것이다. 배 침몰사고 때 구해준 사람은 전영준(1928)씨로 오천
면영보리가숭구지가집이었고,구술자보다2살이위였다.낙동리한궁마을주민의중선배
에취직하여화장
으로일하고있다가우연히사고를목격하고구해주었던것이다.
3)
그러나 지월순 씨는 당시 얼굴도 예쁘고 마을에서 똑똑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라 뱃일하
는 총각에게 시집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처음 가져온 사주를 돌려보내는 등 완강하게 거
절하였으나 재차 사주를 가지고 왔고, 신랑이 직접 찾아오기도 해서 할 수 없이 19살이 되
던해,1949년10월에결혼하였다.
신랑이 사는 오천면 영보리 갈매못에는 단 4가구가 살고 있었고, 멀리 떨어진 논 가운데
에서 물을 길어다 먹는 등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농사보다는 어업을 하며 생활하고 있었
다. 가정형편도 어려워 결혼하려고 아래채를 짓고 윗채에 들어가 살았으나 농이 들어갈 곳
도없는정도였다.
결혼식은 신랑 집에서 했는데, 배를 타고 오천으로 건너가 가마를 타고 가다가 고개의 경
사가심해걸어서신랑집으로갔다.후행으로따라간사람은6촌오빠였다.혼수는간략하
게하였는데장롱과이불2채,옷가지정도였다.
친정살림때문에1950년봄친정으로왔다
결혼해서 몇 달을 오천면 영보리 갈매못에서 생활하다가 친정으로 돌아왔다. 당시 아버
3)중선배에서음식을담당하는최말단의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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