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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군율시행도 불공정했으니 더욱 억울할 것이다. 김경징, 장신 등이
조정내의 여러 힘있는 배경으로 인하여 예우를 갖춘 죽임을 당했지만 그는
저자거리에서 참수를 당했던 것이다. 또한 강진흔과 충청수군의 갑곶 싸움은
경기수군이나 수군 연합부대가 치렀어야 정상이나 지휘부의 작전 실패로 경
기수군은 교동도에, 장신 수군은 광성진에 배치되어 충청수군만이 그 자리에
있게 되었고, 훗날 경기수군보다 더 심한 책임 추궁을 당한 것 또한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만갑이 지은 병자록에 가장 용감히 싸우고도 억울한 죽
음을 당한 장수로 평가 기록되면서 그 진실이 후세에 알려지게 되었고, 오늘
날은 용감하게 열심히 싸운 충청수사 강진흔으로 평가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경기도의 수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더구나
객군(客軍)으로서 결정적 시간에 결경적인 장소에서 용감히 싸웠던 충청수군
과 수사 강진흔이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충청수영이 있는 보령 지역민들은 알
아야 할 것이다.
(3)수군절도사명단
조선시대 충청수사의 임기는 2년이었는데,『충청수영사례집』에 기록된 내
용을 바탕으로『조선왕조실록』이나『승정원일기』등에 의해 부임일을 고찰
하여 기록한 것이다.
水軍使道 次序(忠淸水營事例集)
번호
이름
번호
이름
번호
이름
僉使
都節制使
僉使
1
洪自海
4
姜楊
3
曺彦
2
辛悅
5
盧仲齊
260!충청수영(忠淸水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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